예술청은 서울문화재단(이하 재단)이 동숭아트센터를 리모델링한 대학로 청사에 조성한 협치형 예술공유 플랫폼이다. 재단과 예술계가 함께 거버넌스를 구축해 현장의 다양한 이슈들을 공론화하며 실험하게 된다. 국내는 물론 전 세계적으로도 유사한 사례를 찾아볼 수 없는 파격적인 시도로 주목되는 예술청이 10월 21일 정식 개관에 앞서 지난 24일 가(假)오픈 했다. 동숭아트센터 1~2층은 예술청, 3~4층은 재단 사무 공간, 5층은 연습실·다목적홀·세미나실이 조성됐다. 지하의 블랙박스형 극장은 내년 상반기에 개관한다.
예술청은 2016년 서울시가 처음 계획을 수립한 뒤 2018년 자문 과정을 거쳐 재단이 2019년부터 본격 준비에 나서면서 지금에 이르렀다. 2019년 첫해에는 현장 예술가와 기획자 8명으로 구성된 ‘예술청 기획단’을 조직해 예술청 공론화 프로젝트를 실시했고, 2020년에는 100명 이상이 참여한 ‘예술청 운영준비단’이 만들어져 거버넌스 실험에 참여했다. 그리고 올해 예술청의 운영을 담당할 공동운영단 1기를 공모, 예술청장 2명과 운영위원 9명이 2월 초 선정됐다. 이어 재단에서 합류한 당연직 공동 예술청장과 예술청팀 8명이 지난 4월 초부터 공식 업무를 시작했다.
옛 동숭아트센터 1~2층에 문을 연 예술청
공동청장은 공연과 축제 분야에서 활동해온 김서령 독립프로듀서, 시각예술 분야에서 예술가 겸 기획자로 활동해온 여인혁 작가, 서울문화재단에서 예술교육 등 다양한 사업과 예술행정 전반을 경험한 장재환 예술청 운영단장 등 3명이 맡았다. 예술청 가오픈을 계기로 공동청장 3명에게 아직은 낯선 예술청에 대해 설립 취지와 운영 방향 등에 대해 들어봤다.
- 자기소개를 해달라. 어떻게 해서 예술청장에 지원하게 됐나?
김서령 “공연과 축제 분야에서 독립 프로듀서 겸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활동하고 있다. 예술 생태계 문제들을 고민하던 상황에서 2018년 예술청 관련 자문 역할로 참여하게 됐다. 그리고 2019년 예술청 기획단에 속해 공론장인 동숭예술살롱과 공간실험 프로젝트 텅빈곳 등의 기획, 운영에 참여하면서 현장 예술가들과 예술청의 청사진을 그렸다. 이어 2020년 예술청 운영준비단의 일원으로써 운영 모델을 만드는 데 힘을 보탰다. 예술청을 통해 민관 협치의 혁신적인 모델을 실현하고 싶어서 1기 공동 예술청장에 응모했다.”
여인혁 “시각예술 작가이자 기획자로 활동해 왔다. 그동안 세운상가 재생사업의 PM(프로젝트 매니저)로도 활동하는 등 여러 공공 프로젝트에서 행정 업무를 담당하기도 했다. 예술청에 대해서는 예술청장 공모를 본 뒤에야 알게 됐는데, 실제 현장에서 느껴 왔던 답답한 부분을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응모하게 됐다. 예술청이 매우 실험적인 모델이지만 공공에서 선도적으로 나선다는 점에서 기대를 하고 있다. 예술청의 초기 단계부터 참여한 김서령 청장과 달리 늦게 참여했기 때문에 그동안 다른 운영위원들과 더 많이 소통하기 위해 노력했다.”
장재환 “현장에서 공연 기획을 하다가 2004년 재단 설립 때부터 근무하고 있다. 지난 4월부터 예술청 운영단장이자 공동 예술청장을 맡게 됐다. 그동안 재단이 삼일로 극장 등 거버넌스를 시도한 사례들이 있지만 예술청처럼 본격적인 사례는 처음이라 어깨가 무겁다. 사실 재단 내부에서는 예술청과 관련해 효율성이 떨어지는 것과 함께 실무자에게 직접 참여 없는 행정 책임만 부여되는 것 아니냐는 부정적 시각도 있다. 재단과 현장 예술가가 모든 책임과 권한을 갖고 동등한 입장에서 운영하게 될 예술청이 거버넌스에 대한 긍정적인 사례가 되길 기대한다.”
- 예술청은 왜 만들어지게 됐나?
장재환 “기존의 예술행정은 일방향적인 것이 대부분이다. 공공에서도 현장의 목소리를 반영하려고 노력하지만, 구조적으로 쉽지 않다. 지난 2016년 예술가들도 예술행정에 참여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자는 현장의 요구를 반영해 서울시가 ‘비전 2030, 문화시민도시 서울’과 ‘서울예술인플랜’을 만들면서 예술청이 시작됐다.”
- 서울시의 시민청이나 청년청, 서울문화재단의 청년예술청과 예술청의 차이는 무엇인가?
김서령 “이들 기구의 거버넌스 대상이나 목적은 각각 시민, 청년 등으로 명확하게 드러난다. 예술청이 설립되면서 예술인이 거버전스의 당사자가 되어 예술정책, 예술환경 등을 고민하고 변화·발전하는 주체로서 작동할 수 있다고 본다. 재단 청년예술청의 경우 그동안 청년예술인에 초점을 맞춰 다양한 실험과 시도를 해 왔다. 이에 비해 예술청은 장르와 대상 등이 확장되는 만큼 훨씬 넓은 범위를 다루게 될 것이다. 기존의 주류 예술계 외에 소위 예술지원사업에서 배제돼 있지만 예술의 영역에 있는 예술인들의 목소리도 들으려고 한다.”
5가지 사업 방향 도출…건강한 공론장 조성에 우선순위
- 예술청은 정확히 무엇을 하는 조직인가?
김서령 “예술청의 정체성은 그동안 가장 중요한 의제였다. 방향성이 확실해야 여기에 맞는 사업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올해 1기 공동운영단이 발족한 이후 라운드 테이블을 열고 정체성을 뽑아내는 과정을 거쳤다. 공동운영단 20명이 정체성을 놓고 토론에 토론을 거듭한 결과 ‘예술청은 예술인이 주도하는 거버넌스 기반의 연결·연대·확장 플랫폼’으로 정의하게 됐다. 단어 하나하나를 놓고 격렬하게 토론했는데,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리긴 했지만 이런 정체성을 도출하는 과정이 예술청다웠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런 정체성은 이어지는 핵심가치나 사업 방향을 보면 좀 더 명확해진다.”
- 예술청의 사업 방향에 대해 구체적으로 설명해 달라.
여인혁 “예술청의 정체성에 이어 핵심가치가 정리됐다. ‘시도와 모험’ ‘자율과 책임’ ‘평등과 안전’ ‘공존과 상생’이다. 그리고 이 핵심가치들을 반영한 사업 방향이 5갈래로 정해졌다. 예술인이 플랫폼인 예술청을 통해 연결되거나 맺어지면서 네트워크를 확장하는 ‘매개 사업’, 코로나19 피해를 비롯한 예술가의 생존과 복지 문제를 다루는 ‘권익 사업’, 자유롭게 표현하고 안전하게 창작할 수 있도록 아이디어를 지원하는 ‘창작기반 조성사업’, 다양한 현장의 이슈나 의제를 예술청을 통해 확장시키는 ‘공론화 사업’, 지속적인 예술 생태계의 기반을 알기 위한 ‘조사·연구 사업’이다. 조만간 5가지 영역에 따른 사업들이 시행될 예정이다.”
- 5가지 사업 방향 가운데 현재 가장 역점을 둔 것은 무엇인가?
여인혁 “예술청이 현장의 목소리를 확인하고 발화시켜 행정에 반영하는 곳이라는 점에서 ‘공론화 사업’을 우선순위에 뒀다. 단순히 현장의 외침으로 끝나선 안 되기 때문이다. 온·오프라인을 연계한 공론장인 ‘예술청 아고라’를 열 계획이다. 더 많은 예술인이 참여할 수 있도록 재단의 지원 시스템과 연동시킬 계획이다.”
김서령 “현장의 이슈를 발굴하고 다양한 목소리를 담는 건강한 공론장이 꼭 필요하다고 본다. 최근 페이스북 등 SNS상에서 일부 즉흥적이거나 감정적인 발언이 분위기를 좌지우지하기도 하다가 공론으로 연결되지 못한채 사라지는 모습을 자주 목격하게 된다. 예술청의 공론장은 크고작은 다양한 의제들을 발굴하고 발전적 토론과 연구를 통해 현장의 긍정적인 변화로 이어지는 과정을 예술현장과 함께 해 나가는 것을 목표로 한다.”
- 이런 사업을 위한 예술청의 연간 예산은?
장재환 “예술청의 연간 예산은 2021년 기준으로 21억6000만 원이다. 이 가운데 사업비·인건비·홍보비에 14억 원, 나머지 7억6000만 원은 시설조성 및 공간조성에 책정돼 있다.”
느리지만 소통 통해 현장에 근본적 변화 가져오길 기대
- 예술청이 거버넌스와 실험을 지향하지만, 행정의 측면에서 성과를 내야 하지 않나?
장재환 행정의 속도와 거버넌스의 속도는 다르다. 예술청을 통해 서로 이해하면서 그 속도의 차이를 줄이는 게 중요하다고 본다. 속도의 차이를 인정하지 않으면 실패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예술청을 구성하는 현장 예술인과 재단 행정 인력들이 열린 마음으로 끊임없이 소통하는 것이 성패를 좌우할 것이다. 그리고 시정과 정책의 변화 속에 이 거버넌스의 지속 여부도 지켜봐야 할 것 같다.
김서령 효율성을 놓고 보면 예술청의 거버넌스는 효율적일 수 없다. 소수의 결정으로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20명에 달하는 공동운영단이 논의를 거치기 때문이다. 게다가 공동 예술청장 2명과 민간 운영위원 9명의 경우 비상근이어서 예술청 업무와 과제에 비해 투입해야 할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면도 있다. 하지만 행정의 속도와 거버넌스의 속도의 차이를 점점 이해하는 가운데 소통을 통해 건강하고 합리적인 결정을 내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우리만의 호흡을 찾아가고 있는 중이다.
- 여러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이런 거버넌스가 필요한 이유는?
여인혁 예술청에서 예술가, 기획자, 행정가가 서로 스킨십을 통해 공존하는 방법을 익히고 있다. 비록 논의나 결정 과정이 효율적이지 않고 시행착오를 겪기도 하지만 그 과정에서 서로를 이해하고 또 다른 아이디어나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내고 있다. 더디기는 하지만 예술청은 우리 예술 현장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 역할을 할 것으로 생각한다.
장지영 선임기자 jy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