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대한민국 국적 아동의 여권 영문(로마자) 이름을 외국 현지에서 사용하는 영문명으로 정정할 수 있다는 법원의 판단이 나왔다. 재판부는 여권법 시행령 이후에도 계속해서 완고한 태도를 보여온 외교부의 영문 여권명 변경신청 거부처분을 취소하고 허용한 최초의 판결이라고 밝혔다.
서울행정법원 행정11부(부장판사 강우찬)는 지난 20일 A군(7)이 외교부 장관을 상대로 제기한 여권 영문성명 변경 거부처분 취소 청구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했다고 31일 밝혔다.
A군은 2014년 프랑스에서 출생해 한국 국적을 가지고 벨기에와 프랑스에서 살고 있다. A군의 부모는 프랑스 행정기관에 A군의 출생을 신고하는 과정에서 A군의 이름을 프랑스어식으로 기재했다. A군의 부모는 같은 방식으로 국내 여권을 신청했으나, 서울 종로구청은 로마자표기법에 어긋난다며 영문 이름 표기를 임의로 바꿔 여권을 발급했다. A군의 부모는 행정심판을 청구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이에 지난해 10월 소송을 제기했다.
A군 측은 여권 이름과 프랑스 현지 이름이 달라 초등학교 진학, 공항 이용 등 일상생활에서 큰 불편을 겪고 있다고 주장했다. A군의 경우 여권법 시행령상 ‘국외에서 여권의 로마자 성명과 다른 로마자 성명을 취업이나 유학 등을 이유로 장기간 사용한 경우’에 해당해 변경 사유가 인정된다는 것이다.
반면 외교부는 A군이 현지 로마자 성명을 해외에서 일관되게 장기간 사용했다고 인정할 수 없다고 반박했다. 이어 외교부는 “여권의 대외 신뢰도 제고 등을 위해 로마자 성명 변경은 신중해야 한다”며 “여권에 기재되는 로마자 성명은 가족관계등록부에 기재된 법적 성명을 음역에 맞게 표기해야 한다”고 맞섰다.
재판부는 A군의 손을 들어줬다. 헌법 규정과 유엔 아동 인권 협약의 취지에 비춰볼 때 단순한 국가의 위상이나 추상적인 공익이 기본권 보장보다 앞설 수는 없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나이가 어린 아동이 여권상 영문명으로 인해 겪는 불편함은 제도적 불합리에 기인했다”며 “그 불이익이 결코 특별한 보호의 대상인 아동에게 돌아가도록 방치해서는 안 된다”고 판시했다.
박성영 기자 ps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