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변화 시대…숲에서 답을 찾는 사람들

입력 2021-08-31 00:00 수정 2021-09-28 16:09
도시를 쾌적하게 만들기 위해 도심에 숲을 조성하는 자치단체의 움직임이 가팔라지고 있다. 이들은 폭염과 미세먼지 등 도심에서 더욱 심화한 기후 문제를 완화하고 증가하는 시민들의 산림휴양 욕구에 부응하기 위한 교차점에서 숲의 기능에 주목하고 있다. 제주도도 생활 공간과 밀접한 곳에 숲을 조성하고 이를 유기적으로 연결하는 작업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그동안 우리가 몰랐던 숲의 기능과, 산림을 통해 공간에 활력을 불어넣은 지역 사례, 제주도 도시녹화사업의 방향을 3회에 걸쳐 싣는다.
생활권 가까이 조성된 숲은 산책로와 휴식·소통의 공간으로서시민들의 일상을 풍요롭게 한다. 사진은 폐선부지를 공원으로 조성한 서울 경의선숲길 연남동 구간의 모습. 문정임 기자

숲이 도시에 주는 혜택
2012년 유엔은 숲이 생태계에 미치는 중요성을 알리기 위해 3월 21일을 ‘세계 숲의 날’로 지정했다. 지난 3월 21일에는 숲의 날을 맞아 ‘숲의 복원이 회복과 번영의 길’임을 다시 한 번 강조하고 숲 가꾸기에 각 국이 국제적인 노력을 기울여 줄 것을 촉구했다.

지자체들이 숲의 기능에 주목하고 있다. 나무 그늘이 한낮 도심 온도를 낮추고 열대야로 잠 못 드는 밤을 줄여주는 실질적인 기능을 한다는 사실이 연구를 통해 확인되면서 숲을 단순 조경 요소에서 도시 문제를 해결할 친환경적 수단으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여름철 기온이 높아 ‘대프리카’로 불리는 대구는 열섬현상까지 얹혀진 도심 온도를 낮추기 위해 1996년부터 1000만 그루가 넘는 나무를 심었다. 그 결과 전국 최상위권이던 열대야 발생 일수는 광주나 전주보다 떨어졌고, 최근 5년 간 대구의 온열질환자 발생은 2018년 122명에서 올해 24명으로 전국 특별시와 광역시 가운데 가장 낮았다.

2019년 대구시 녹피율(도시 전체의 면적 중 녹지 비율)은 다른 특·광역시 평균(51%)을 크게 웃도는 62%까지 올라갔다. 장기미집행 도시공원 등 550만㎡의 공원을 조성해 대구시의 절반이 넘는 130만명이 거주지 반경 1㎞ 이내에서 공원을 이용하고 있다.

산림청 국립산림과학원 연구에 따르면 숲은 여름 한낮 평균 기온을 3~7℃ 가량 끌어내린다. 습도는 9~23% 상승시켜 여름철 천연 에어컨의 역할을 너끈히 해낸다.

숲은 미세먼지를 줄이는 데에도 탁월하다. 1㏊(3025평)의 숲은 연간 대기오염 물질 168㎏을 흡수·흡착한다. 가로수로 많이 식재되는 느티나무 한 그루(엽면적 1600㎡ 기준)는 5~10월 사이 1.8t의 산소를 방출하고 2.5t의 이산화탄소를 흡수한다. 회색빛 도심에 신선한 산소를 제공하고 기후변화의 주범인 탄소를 포집하는 탄소저장고의 역할까지 수행하는 것이다.

숲은 미세먼지 흡착 등 환경 개선 기능과 치유의 기능을 두루 갖추고 있다. 사진은 제주도 서귀포시 남원읍 한남리에 위치한 머체왓숲길의 편백나무 숲 모습. 독자 제공

건강·휴식·안정…숲의 또 다른 기능
비만 고혈압 당뇨 등 환경성 질환의 증가와 스트레스 심화로 산림 치유, 산림 휴양의 욕구도 높아지고 있다.

제주시 도심 녹지축 중 하나인 한라수목원에는 하루 4000~5000명의 발길이 이어진다. 제주에는 한라산을 포함해 368개의 오름과 휴양림이 곳곳에 자리했지만 일상에서 잠시 짬을 내 가볍게 호흡을 가다듬을 수 있는 도심 속 녹지 공간은 주말 산행과는 또 다른 방식으로 삶을 풍요롭게 한다.

코로나19 장기화로 피로감이 늘고 건강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면서 자연에서 활력을 찾으려는 산림휴양 욕구는 더 커졌다.

시민들의 숲 사랑은 수치에서도 엿볼 수 있다. 올 1~6월 한라생태숲을 찾은 탐방객은 12만3000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9만9000명)보다 24% 늘었다. 서귀포시가 운영하는 산림휴양시설 이용객도 2019년 29만9616명에서 2020년 35만2987명으로 18%나 증가했다.

국립산림과학원의 연구에 따르면 숲에서 15분간 나무를 바라보는 것 만으로도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티솔 농도가 15.8% 감소하고 혈압이 2.1% 낮아진다. 여기에 걷는 운동까지 더해지면 시민들은 숲에서 심리적 안정과 함께 체력 증진 효과까지 얻을 수 있다.

공원 옆 내 집 선호도 증가
이처럼 도시민들에게 쾌적한 자연환경을 제공하고 여가 공간을 마련해주는 도시숲은 부동산 시장에서도 귀한 대접을 받고 있다.

육지부의 경우 역세권보다 숲세권 시세가 높아지고 있다. 서울 잠실에서는 석촌호수공원 주변 오피스텔이 일대 오피스텔 가운데 가장 거래가가 높다. 부산에서는 군부대가 빠져나간 뒤 부산시민공원이 들어선 지역 주변부로 아파트 건설 붐이 일어나 부산진구청은 시민공원이 주변 아파트 사유물이 되지 않도록 개방성을 높이는 방안을 고민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통적으로 좋은 집의 요건이 되어 온 역세권(지하철 역과 가까운 주거 권역), 학세권(주변에 좋은 학교가 고르게 분포되어 있는 주거 권역), 슬세권(슬리퍼와 같은 편한 복장으로 각종 여가 편의시설을 이용할 수 있는 주거 권역)에 이어 주거 공간의 친환경성(숲세권, 공세권)이 부동산의 가격 경쟁력을 올려주고 있는 것이다.
지난 10일 제주도의회 소회의실에서 도시숲 조례 제정을 위한 토론회가 열리고 있다. 도시숲 등의 조성 및 관리에 관한 조례는 제주도의회 김황국 의원 발의로 빠르면 9월 임시회에서 다뤄질 전망이다. 문정임 기자

산림청도 이 같은 생활권 내 산림의 중요성을 인식해 도시숲법을 제정했다. 지난 6월 시행에 들어간 도시숲법은 시민들이 도시숲을 잘 이용할 수 있도록 중앙 및 지방 정부의 조성·관리 의무를 강화하고 시민·단체·기업이 이 과정에 직접 참여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근거를 담고 있다.

제주에서도 법 제정에 따른 후속 조치로 도시숲 조례 작업이 진행 중이다. 도시숲 조례가 제정되면 도내에서도 도시숲의 기능을 활용하는 다채로운 사업이 민·관 유기적 협력 속에 탄력을 받으며 추진될 것으로 기대된다.

※이 기사는 제주특별자치도의 지원을 받아 작성되었습니다.

제주=문정임 기자 moon1125@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