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대통령의 아프가니스탄 조기 철군을 반대하는 미국 내 여론이 급증했다. 이슬람국가 호라산(IS-K)의 자살폭탄 테러 직후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다. 미국인 10명 중 7명은 자국 시민은 물론 미국을 도운 아프간 조력자가 모두 탈출할 때까지 철군을 미뤄야 한다고 답했다.
아프간에는 미국인 250여 명이 남아 있는 것으로 당국은 추정하고 있다. 반면 미국행을 원하는 아프간 조력자는 수만 명에 달하는 것으로 외신들은 보고 있다. 이틀 앞으로 다가온 아프간 철군은 최악의 혼란을 연출하고 있다.
지지율 급락
ABC뉴스와 여론조사업체 입소스가 지난 27일~28일 벌인 여론조사 결과 미국인 71%가 아프간 조력자가 대피할 때까지 미군이 남아있어야 한다고 답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미국인이 모두 대피할 때까지 미군이 주둔해야 한다’는 응답(84%)보다 조금 낮은 수준이다. 아프간 조력자에 대한 대피 필요성을 깊이 공감하고 있다는 의미다.이런 응답은 지지 성향과 상관없이 모든 층에서 높게 나타났다. ABC뉴스는 “민주당 75%, 공화당 77%, 무소속 70% 등 모두 70% 이상의 응답을 보냈다”며 “미군 주둔에 대한 초당적 지지는 놀라울 정도로 일관적”이라고 분석했다.
바이든 대통령의 아프간 대처 방식에 대한 지지도는 38%에 그쳤다. 한 달 전인 지난 7월 23~24일 조사(55%) 때보다 17% 포인트나 급락했다. 공화당의 경우 바이든 대통령의 아프간 대처 방식에 대해 11%만 지지를 보낸 것으로 나타났다.
이번 조사는 지난 26일 발생한 카불 공항 테러 직후 실시된 것이다. 대규모 사상자 발생이 아프간 철군 여론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풀이된다.
다만 아프간 철군이 미국 본토의 테러에 미칠 영향과 관련한 질문에 응답자 56%가 ‘별 차이가 없을 것’이라고 답했다. ‘보다 안전해지지 않을 것’이라는 응답은 36%로 나타났다. ‘더 안전해질 것’이라는 응답은 7%에 그쳤다.
민간인 사상자 발생
미국의 자살폭탄 차량 공습 여파로 아프간 민간이 사상자가 여러 명 발생했다는 보도는 바이든 대통령에 또 다른 악재로 작용할 전망이다.
빌 어번 미 중부사령부 대변인은 이날 “미군은 카불에서 드론으로 차량을 공습, 카불 공항에 대한 IS-K의 임박한 위협을 제거했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그는 “성공적으로 목표물을 맞혔다는 걸 자신한다. 중대한 2차 폭발이 일어나 차량에 상당량의 폭발물이 있었음을 시사했다”고 말했다. 민간인 피해에 대해서는 “가능성을 확인하고 있지만, 현재로선 그런 징후가 없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오후 성명에선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불분명해 더 조사하고 있다. 무고한 인명 손실 가능성에 대해 깊이 슬퍼하고 있다”고 했다. 워싱턴포스트(WP)는 “민간인 사상자 발생을 인정한 것”이라고 보도했다.
공습 직후 SNS에는 민간인 사상자 발생에 대한 소식이 계속 올라왔다. 자비훌라 무자히드 탈레반 대변인도 “미군 공습으로 사상자를 냈다. 정확한 수를 조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CNN방송은 피해자 가족과 목격자 발언을 인용해 어린이를 포함한 민간인 사상자가 발생했다고 보도했다. 방송에 따르면 피해자 중에는 4살 이하 아이 4명 등 10세 이하가 6명이다. 나머지 3명은 40세와 30세, 20세로 전해졌다.
피해자 가족은 “우리는 평범한 가족이었다. 우리는 이슬람국가(IS)가 아니다”고 호소했다. 한 목격자는 “이웃들이 모두 도움을 주려고 물을 가져와 불을 껐는데 5~6명이 숨진 것을 봤다. 아버지와 두 자녀가 있었다. 산산이 조각나 죽었다”고 말했다.
워싱턴포스트는 “미국은 해당 차량에 한 차례만 공습했다. 다만 2차 폭발이 인근 건물에 피해를 줬을 수 있다”는 당국자 발언을 전했다.
AP통신은 “해당 차량에 여러 명의 자폭 테러범이 타고 있었고, 차량은 카불 공항을 향하고 있었다”며 “이번 공습으로 어린이 3명이 목숨을 잃었다”고 전했다. 반면 CNN방송은 “폭탄 조끼를 입은 테러범이 실려 있는 차량인지, 차량으로 폭탄테러를 하려고 했던 것인지는 불분명하다”며 “당국자는 ‘장전이 완료돼 사용할 준비가 돼 있었다’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테러가 임박해 공습이 불가피했다는 점을 인정하더라도, 철군이 극도의 혼란을 초래한 끝에 민간인마저 희생했다는 비난은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침통한 바이든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여러 차례 침통한 표정을 보였다.
그는 오전 미 델라웨어주 도버 공군기지에서 열린 13명의 장병 시신 인도식에 참석해 희생자를 애도했다. 성조기가 덮인 관이 C-17 수송기에서 차례로 나와 운구 차량으로 이동하는 동안 바이든 대통령은 왼쪽 가슴에 손을 얹고 경례했다. 눈을 감거나 애통해 하는 모습이 자주 목격됐다. CNN은 “관이 운구되는 50분여 분간 기지 전체에 완전한 침묵이 흘렀다”고 보도했다. 유족이 있는 자리에서만 비통한 울음소리가 흘러나왔다.
바이든 대통령은 오후 허리케인 아이다 대응을 위해 연방재난관리청(FEMA)을 방문한 자리에서 “13명의 영웅 가족을 만나고 왔다. 그들을 위해 기도해 달라”고 부탁했다. 브리핑을 마친 뒤 기자가 아프간 관련 질문을 하자 “그 질문은 받지 않겠다”고 말을 자른 뒤 자리를 떠나는 모습도 보였다.
워싱턴=전웅빈 특파원 im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