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시아버지는 오래전부터 “우리 땅 여덟 필지 중 세 필지는 너그들 것잉께 걱정하지 말그라”고 시어머니와 자식들 앞에서 줄곧 말씀하셨다. 시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시아버지는 그 말씀을 실천하기 위해 세 필지를 그녀의 아들에게 증여했다. 그러자 사단이 났다. 시아버지와 함께 살던 시동생이 증여를 인정할 수 없다고 반발했다. 시동생은 이미 그 땅에 공장설립허가를 받아놓았던 것이다. 치매를 앓고 있던 시아버지는 증여를 약속한 땅인지도 모르고 시동생이 들이미는 서류에 그만 도장을 찍었다고 한다.
그녀의 남편은 유일한 재산이다시피 한 빵집을 남기고 이미 4년 전에 세상을 떠났다. 세상을 떠나기 2년 전 남편은 갑자기 쓰러졌고, 그때부터 그녀는 남편 곁에 붙어있어야만 했다. 그녀는 하던 일을 그만두고 남편과 함께 빵집을 운영했다. 건강이 좋지 않던 남편은 한시도 그녀 곁을 떠나지 않으려 했다.
30년 전에 미용 기술을 배우다 만난 남편은 내성적이었지만, 성실해 한평생을 맡겨도 되겠다는 결심으로 결혼했다. 결혼 후, 남편은 돈 버는 재주는 없었다. 여러 사업에 손을 댔지만, 그럴 때마다 손해만 봤고, 시댁과 친정 신세를 져야 했다. 거듭된 사업 실패로 자신감을 잃은 남편은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그녀에게 집착하기 시작했다. 남편은 그녀가 다른 남자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조차 싫어했다. 그렇다고 폭행이나 폭언을 하지는 않았다. 표정으로 또는 조용한 말로 싫다는 의사를 표시하였다. 자신을 너무나 사랑해서 그러려니 생각했다. 그렇게 26년을 남편의 우물 속에서 살았다.
그녀에게 집착하던 남편이 갑자기 떠난 후에도 그녀는 한동안 남편이 만들어놓은 틀에 묶여 지냈다. 남편이 정해놓은 틀 밖의 세상이 두려웠다. 26년 동안 그 틀은 감옥이었지만, 한편으로는 안락한 보금자리였다. 그 틀을 깨고 나갈 수가 없었다. 스스로 2년 더 그 틀 속에서 묻혀 지냈다. 무기력했다. 그녀의 삶을 끊임없이 감독하는 남편이 있을 때보다 더 무기력하다. 이런 와중에 빵을 사러 온 누군가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학창시절 동창임을 서로 알아보았다. 곧 동창 모임이 있으니 같이 한 번 가보잔다. 용기를 내어 모임에 참석했다. 그렇게 남편이 만들어놓은 틀, 그 밖으로 한 발 내디뎠다. 친구들과 여행을 다니고 노래방에서 악을 쓰며 노래도 불렀다. 운동 동호회에도 열심히 참여하며 새로운 친구들도 많이 사귀었다. 흥이 생기니 빵도 덩달아 맛이 더해져 찾는 손님이 두 배로 늘었다. 그렇게 보낸 1년은 그녀를 전혀 다른 사람으로 만들어놓았다.
시동생이 법 운운하며 땅을 원래대로 돌려놓으라고 닦달한다. 시누이들도 시동생 편이다. 치매에 걸린 시아버지만이 시동생에게 그러면 안 된다고 타이른다. 그러나 말을 들을 시동생이 아니다.
남편이 만들어놓은 장막을 걷고 나온 지난 1년 동안 그녀는 세상에 대한 자신감을 얻었다. 그 땅은 원래 그녀의 것이 아니다. 남편이 그랬던 것처럼 그 땅이 시댁의 틀 속에 그녀를 가둘 것만 같았다. 그녀는 자유를 선택했다. 다 내주었다. 아들이 그녀의 등을 토닥여준다.
필자가 얼마 전 상담했던 사연이다. 요즘같은 세상에 어느 누가 이런 선택을 하겠는가. 그녀에게도 쉽지 않은 선택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땅보다 훨씬 귀한 자유를 얻었다. 그녀의 선택을 응원하며 이 글을 쓴다.
엄윤상(법무법인 드림) 대표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