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윤정 아신대 아랍지역학 교수
“남성은 여성의 보호자라. 이는 알라께서 여성들보다 강한 힘을 주었기 때문이라. 남성은 여성을 그들의 모든 수단으로써 부양하나니 건전한 여성은 헌신적으로 남성을 따를 것이며 남성이 부재 시 남편의 명예와 자신의 순결을 보호할 것이라. 순종치 아니하고 품행이 단정치 못하다고 생각되는 여성에게는 먼저 충고를 하고 그다음으로는 잠자리를 같이하지 말 것이며 셋째로는 가볍게 때려 줄 것이라. 그러나 다시 순종할 경우는 그들에게 해로운 어떠한 수단도 강구하지 말라. 진실로 알라는 가장 위대하시니라.”(꾸란 4:34)
꾸란에서 보호자라는 의미의 아랍어 ‘까우왐’은 타인의 사업에 열중하고 정직하며 주인의 이익을 보호하고 업무를 잘 돌봐 주는 사람이다. 여기서 남성은 여성의 보호자로서 고용인이 고용주를 대하는 자세로 보호해야 한다는 뜻이다.
또한, 한국어 의미의 번역 꾸란 내용에는 “셋째로는 가볍게 때려 줄 것이라”라는 구절에서 “가볍게”라는 단어가 삽입되어 있다. 그러나 꾸란 주석서들을 살펴볼 때 “가볍게”라는 단어는 한국어 번역본에서만 사용되었다.
그렇다면 합법적으로 꾸란에서 언급하는 남편이 아내를 때려 줄 수 있는 정도는 어느 정도일까. 꾸란 주석서는 이에 대해 얼굴과 급소를 피하고 뼈가 부러지지 않을 정도라고 말하고 있다.
필자는 고대 이슬람법 샤리아를 현시대 각 이슬람 지역에서 적용하여 ‘파트와’를 선언하는 ‘무프티’들의 판례들을 살펴보며, 탈레반 집권으로 인해 고통당하고 있는 아프가니스탄 여성들을 생각한다.
우리는 종교와 신념을 떠나 분명히 지켜져야 할 인간의 존엄성을 지켜야 한다. 인류애로 각계각층에서 신음하는 아프가니스탄 여성에게 힘껏 구원의 손길을 펼쳐야 한다.
모든 이슬람 국가에서 여성탄압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극단적 근본주의 이슬람은 꾸란을 문자적으로 해석하고 이슬람국가 형성을 목적으로 군사행동을 불사한다. 이러한 환경은 일차적으로 여성을 남성과 동등한 인격으로 대우하지 않는 첩경(捷徑)이 된다.
최근 아프가니스탄에서는 탈레반 군인들이 가가호호 방문해서 12세에서 45세까지 여성들의 숫자를 파악하고 군인과 결혼시키기 위해 리스트를 작성하고 있다고 한다. 한국의 역사적 오명인 종군위안부 사건이 떠오르는 장면이다.
극단적 근본주의 이슬람은 꾸란을 문자적으로 해석하고 적용해서 여성을 구타하는 것을 합법적으로 행한다. 그뿐만 아니라 여성을 모든 성범죄의 주체로 바라본다. 이런 이유로 머리부터 발끝까지 얼굴까지 가리는 부르카 착용을 강요하는 것이다.
1996년 탈레반이 장악하여 2001년까지 집권하면서 아프간 여성들은 이슬람 근본주의의 희생양이 됐다. 그들은 신음도 채 내지 못하고 숨죽여 연명하는 삶을 살아야만 했다.
그러한 그녀들에게 다시 찾아온 탈레반은 악몽 같았던 과거의 역사를 반복하고 있다. 이번 탈레반 집권과 동시에 여성들은 교육받을 권리도 박탈당했다.
‘무프티’들이 선언한 ‘파트와’에 의하면 여성들은 교육받기보다는 결혼을 하여 무슬림을 양육하는 것이 여성의 본분이라고 하고 중고등학교에 다니던 여학생에게 중매가 들어오면 공부를 중단하게 하고 결혼을 시키라고 이야기한다.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 집권으로 인하여 수많은 아프간 난민들이 발생했다. 필자는 요르단, 레바논, 그리스, 독일, 인도네시아 난민촌을 다니면서 수많은 이슬람 난민들의 삶을 볼 기회가 있었다.
난민이 발생하면 무엇보다도 여성과 어린이들의 인권유린이 심각해진다. 특히 요르단과 레바논 난민촌에서는 일부다처제로 심적 고통을 호소하는 무슬림 여성들을 쉽게 볼 수 있었다.
또한, 육아의 환경이 갖추어지지 않은 상황에서 피임이 법적으로 허용되지 않는다. 따라서 계속된 출산으로 쇠약해진 몸으로 가사노동에 시달리고 있는 무슬림 여성을 잊을 수 없다.
지구촌에서 함께 호흡하고 있는 여성의 한 사람으로 이들의 고통을 더욱 외면할 수 없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이 있기 때문이다.
한국 근대역사에서 남존여비 사상에 의해 버려진 여자아이들을 살폈던 서서평 선교사와 같은 많은 기독교 선교사들이 있었기에 한국 여성은 현시대 한국인으로서 행복한 삶을 누리고 있다.
사랑받은 자로서 아프간 무슬림 여성들을 향하여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그들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고 움직일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