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도날드의 식자재 관리 부실은 ‘맥노예’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로 열악한 매장 직원들의 근무 환경과 ‘매출 우선주의’가 빚어낸 구조적인 문제인 것으로 나타났다. 맥도날드 전현직 직원들은 “식자재 문제는 일부 매장이 아니라 상당히 많은 매장에서 일어나는 일” “본사가 알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주장했다. 맥도날드 일부 매장에서 유통기한이 지나거나 자체 관리 기준인 2차 유효기간을 넘긴 식자재를 보관하거나 판매한 정황이 드러난 것을 두고 한 말이었다.
서울의 한 맥도날드 매장에서 1년 간 매니저로 일한 경험이 있는 A씨는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매니저 업무 중에는 하루 중 폐기한 식자재가 얼마나 있었는지 전산 시스템에 입력하는 게 있다”며 “본사가 각 매장별로 (재고 및 폐기 현황이) 어떤 상태인지 알 수 있는 시스템”이라고 말했다. 매장에 들어오고 나가는 식자재 현황은 모두 전산 기록에 남는 시스템이 갖춰져 있으며 본사에서 이를 알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의미다. 전현직 직원들은 29일 맥도날드의 철저한 보고 시스템을 근거로 “본사가 식자재 부실 관리 문제를 몰랐다는 건 말이 안 된다”고 주장했다.
A씨 등 설명을 종합하면 맥도날드는 매니저급 직원들만 이용할 수 있는 전용 사이트를 통해 식자재의 재고와 폐기 현황 등을 일일이 기록한다. 일선 매장에서 사용하는 식자재 및 물품 주문도 전산을 통해 이뤄진다. 전산을 통해 일선 매장의 매출 현황, 식자재 로스(손실)율, 재고 현황 등을 낱낱이 알 수 있는 시스템이 갖춰져 있다는 것이다. 맥도날드 한 직원은 “매니저들은 수기(手記) 장부와 전산시스템 두 곳에 꼼꼼하게 기록을 남긴다”고 설명했다.
본사 측이 각 매장에 ‘맞춤형 목표’를 제시하는 점도 전현직 직원들의 주장을 뒷받침한다. A씨는 “본사 측에서 매니저들에게 보내는 업무 메일을 보면 각 매장별 지적 사항이 적혀 있다”며 “전산시스템은 OC가 기본적으로 확인하는 대상”이라고 설명했다.
A씨는 지역의 여러 매장을 관리하는 ‘오퍼레이션 컨설턴트’(OC·Operations Consultant)가 점장과 부점장에게 “왜 이렇게 ‘웨이스트’(폐기하는 식자재)가 많냐”며 질책하는 장면을 목격한 것을 근거로 들었다. OC가 일선 매장의 식자재 현황을 구체적으로 파악한 상태에서 업무 지시를 내리고 있다는 취지였다.
“왜 이렇게 웨이스트가 많냐”
복수의 전현직 직원들은 ‘2차 유효기간 스티커 갈이’ 등 식자재 관리 문제가 일부 매장이 아닌 상당수 매장에 만연해 있다고 주장했다. 아르바이트노동조합(알바노조)이 관련 보도 직후 받은 제보에는 이를 뒷받침하는 증언들이 다수 포함됐다. 현직 직원이라고 밝힌 한 제보자는 “이 소식을 접한 전현직 직원들이라면 ‘아, 터질 게 터졌구나’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을 것”이라고 말했다. 제보자는 “마감시간뿐 아니라 아침과 점심, 저녁 시간에도 라벨을 출력해 유효기간을 연장하는 방법으로 시간이 경과한 재료로 햄버거를 만드는 경우가 많다”고 주장했다.최근 1년 간 서울의 한 매장에서 근무했다는 다른 제보자는 “출근하면 하는 일 중 하나가 주방의 2차 유효기간 타이머를 변경하는 일”이라고 폭로했다. 맥도날드는 상온에 보관하다 곧바로 햄버거에 사용하는 양상추, 양파 등의 식자재에 자체 유효기간을 설정해 놓고 이를 타이머로 관리하고 있다. 그런데 이 유효기간을 임의로 조정해서 사용했다는 얘기다. 이 제보자는 “(매니저 등이) 시켜서 하는 일이라 하긴 했지만 이러면 타이머가 왜 있는지 의문이 들었다”고 말했다. 다른 매장의 한 직원은 “스티커 갈이를 하지 않은 매장을 찾기가 훨씬 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제보자는 식자재 문제가 보도된 뒤 맥도날드가 아르바이트 직원에게 책임을 지우는 상황을 이해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맥도날드가 아르바이트 직원에게만 정직 3개월이라는 중징계 처분을 내린 것은 결국 ‘꼬리 자르기’ 아니냐는 주장이다. 이 제보자는 “맥도날드 알바들은 서로를 ‘맥노예’라고 부르는데, 절대 지나치지 않은 말”이라며 “기계처럼 쉬는 시간도 없이 시키는 일을 해내야 하는 구조다. 시키는 일만 해야지 다른 일을 하면 바로 욕을 먹는다”고 말했다. 점장이나 부점장 등 매니저의 지시에 불응하는 게 사실상 불가능한 아르바이트 직원들의 근무 조건을 전제로 이번 사안을 들여다봐야 한다는 의미다.
전현직 직원들은 본사와 관리직 등의 무리한 ‘실적 우선주의’를 구조적인 원인으로 꼽았다. A씨는 “얼마나 비용을 잘 아껴서 효율적으로 매장을 운영하는지 여부가 결국 점장과 부점장 등 매니저의 실적”이라며 “본사 측에서 ‘왜 이렇게 웨이스트(버리는 식자재)가 많냐’며 질책하는 게 매니저들에게는 어떠한 수단과 방법을 쓰든지 비용 지출을 줄이라는 지시와 다름없다”고 말했다. 다른 직원은 “매출을 늘리려면 식자재를 많이 주문해서 팔아야 하는데, 그와 동시에 폐기하는 물량도 최소화하라고 압박하면서 벌어질 수밖에 없는 문제”라고 설명했다.
“식자재 부실”…쏟아진 내부고발
취재팀은 맥도날드 전현직 직원들을 취재하면서 구체적인 식자재 불량 사례를 들을 수 있었다. 맥도날드에서 2019년 퇴직한 B씨는 “카페라떼를 팔 때 유통기한이 지난 우유를 신선한 우유랑 섞어서 쓰기도 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매니저가 신선한 우유 두 팩에 유통기한 지난 우유 한 팩을 넣는 식으로 섞어서 팔도록 했다”며 “유통기한이 지난 우유만 쓰면 고객들이 눈치챌까 봐 그렇게 한 것”이라고 말했다. 근무 당시 유통기한이 지난 제품을 본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 대한 답이었다.문제의 매니저는 커피를 만드는 크루에게 “유통기한이 임박해서 빨리 팔아야 하니 손님들에게 ‘라떼는 어떠세요’라고 물으면서 주문을 유도하라”고 지시했다고 한다. B씨 주장이 사실이라면 유통기한이 이미 지났는데도 ‘임박’했다고 말하며 같은 매장의 직원마저 속인 셈이다. B씨는 당시 재고 정리를 하다가 유통기한이 반나절 지난 우유를 발견하고 일부를 폐기했는데, 남은 우유를 섞어서 사용하는 걸 보면서 충격을 받았다고도 했다.
‘신선한 양상추’를 사용한다는 맥도날드의 홍보 내용과는 상반되는 폭로도 나왔다. 양상추가 바래지거나 짓물러졌을 때까지 보관하다 뒤늦게 폐기하는 일이 반복된다거나 신선도 관리를 위해 만든 유효기간 타이머가 무용지물이라는 증언들이었다. 맥도날드가 유통기한(1차 유효기간)과 별개로 정한 자체 기준인 ‘2차 유효기간’을 지키려면 양상추는 포장을 뜯은 후 상온 보관 시 2시간, 냉장 보관 시 24시간 내 사용해야 한다. 그러나 전현직 크루들은 “현장에서는 사실상 무의미한 얘기”라고 입을 모았다.
B씨는 “오래된 양상추의 색이 붉어져서 눈으로 봐도 못 먹겠다 싶을 정도가 되면 버린다”고 말했다. 유효기간이 조금 지나더라도 곧바로 외관에 변화가 생기지는 않는 양상추의 특성 때문에 관리가 부실하다는 주장이었다. 맥도날드 매장에서는 포장을 뜯은 양상추를 2차 유효기간 타이머가 달린 용기에 담아 보관한다. 익명을 요구한 다른 직원은 “포장을 뜯어 보관통에 담은 양상추는 유통기한이든 2차 유효기간이든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게 된다”며 “관리가 가장 잘 안 되는 식자재”라고 말했다.
‘알바 입’ 막기 급급한 맥도날드
취재팀은 복수의 매장에서 2차 유효기간을 위반한 정황에 대한 대응책, 식자재 관리 부실에 대한 본사의 묵인 여부 등을 맥도날드 본사에 질의했다. 이에 맥도날드 측은 “현재 400여개 매장의 식품안전기준 준수 여부에 대해 재점검을 실시하고 있다”며 “내부 조사 결과와 다른 내용이 제기됨에 따라 재조사를 실시 중이고, 이번 사안을 엄중히 받아들이고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추가로 공개된 내부 고발 내용이나 본사 인지 여부 등에 대해선 별도의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맥도날드는 식자재 관리 부실 문제가 불거진 이후 내부 단속에 들어간 상태다. 익명을 요구한 한 직원은 “언론의 인터뷰 요청이 오면 본사 홍보팀에 사전 확인 후 진행해 달라는 ‘미디어 대응 가이드’가 매장 내부에 최근 게시됐다”고 전했다. 언론 접촉이 이뤄질 경우 회사에 의도치 않은 피해가 생길 수 있으니 매니저와 본사에 미리 보고하라는 내용이 담긴 것으로 전해졌다. 이 직원은 “사실상 언론 접촉을 금지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구자창 기자 critic@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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