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부가 영내 마스크 미착용 등 방역 지침 완화 내용을 담은 구상을 이달 말 시범 도입할 예정이었던 것으로 29일 나타났다. 일선 부대에서 90%를 웃도는 높은 백신 접종률에도 영내 마스크 착용과 각종 활동에 제한된 인원 참여 등에 불편을 호소하는 목소리가 커지면서다.
하지만 대통령의 지시로 방역 완화안이 추진된 사실이 알려지면서 야권을 중심으로 “군 장병들을 대상으로 생체실험을 하려 한 것”이란 비판이 제기됐다. 정치권과 여론 반발에 부딪히면서 군의 방역지침 완화 계획에도 차질이 불가피해졌다.
국회 국방위원회 소속 조명희 국민의힘 의원실이 이날 공개한 ‘군 예방접종 완료 후 적용할 선제적 방역완화 방안’ 문건에 따르면 당초 군은 8월 말부터 9월 중순까지 3주간 방역지침 완화 시범사업을 진행한 뒤 평가를 거쳐 전 군으로 확대할 계획을 마련했다.
방역지침 완화안에는 군 내 집단면역 형성 시 실내외에서 마스크를 미착용하는 방안이 담겼다. 체육시설·샤워시설 이용과 종교활동에서도 인원 제한을 해제하는 방안도 포함됐다. 시범 대상은 접종이 완료된 30세 미만 장병으로 한정됐다. 출퇴근하는 미접종자는 마스크를 착용해야 하며 영외활동에서는 정부지침을 따른다는 내용도 함께 담았다.
국방부는 서욱 장관 명의로 지난 18일 질병관리청 산하 중앙방역대책본부 총괄조정팀에 해당 문건을 보내 검토를 요청한 것으로 드러났다. 군 당국의 방역 완화 검토 사실이 알려진 이후 양 기관은 “방안·적용 시기 등에 대해 논의가 없었다”는 입장을 고수해왔다.
이에 은폐 논란을 자초했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군 관계자는 “문건에 대한 방대본 측 회신이 없었으니 논의가 없었다고 했던 것”이라고 해명했다.
군 통수권자인 대통령이 병사들을 대상으로 ‘생체실험’을 지시했다는 논란으로 비화하면서 군의 구상에도 빨간불이 켜졌다. 국방부는 방대본에 함께 발송한 ‘군내 선제적 방역 완화 방안 검토 요청’ 공문에 “8월 4일 대통령 지시에 따라 검토한 것”이라고 명시하고 있다. 이날은 문 대통령이 서욱 장관을 비롯한 군 주요 지휘관을 청와대로 불러 국방현안 보고를 받은 날이다.
하태경 국민의힘 의원은 “병사들이 마스크를 벗으면 변이 바이러스에 걸리는지(변이대응성), 죽는지(치명률) 등을 관찰해 시범사례로 삼으려 했다”며 “K-방역 홍보를 위해 병사들에게 사실상 생체실험을 지시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청와대 측은 “군의 접종 완료율이 94%에 육박함에 따라 군의 활동을 단계적으로 정상화시키기 위한 방안을 마련하고, 이 과정에서 높은 접종 완료율의 효과를 확인하라는 것이 대통령 지시사항의 취지였다”고 설명했다.
한편 군 내부에선 대부분의 장병들의 2차 접종을 마친 지 2주가 지나 집단면역이 형성된 만큼 영내 활동을 정상화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가 높다. 군 관계자는 “외부와 교류가 없는 야전부대에서조차 강도 높은 방역 지침으로 압박감을 호소하는 장병들이 늘고 있다”며 “정치적 해석보다 장병들의 병영 생활 여건 개선을 고려한 방안으로 바라봐야 할 사안”이라고 말했다.
군 고위관계자들이 참여한 회의에서도 “군이라도 코로나19 이전으로 돌아간 모습을 보여주면 국민이 일상 회복에 희망을 가질 것이고, 백신 접종 의지도 커질 것 아니겠느냐”는 논의가 오간 것으로 전해졌다.
김성훈 기자 hunh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