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람국가(IS)나 IS 호라산(IS-K)과 연관 있는 타깃은 백악관 승인 없이 공격해도 좋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 27일(현지시간) 군 지도부에 이런 명령을 내렸다. 카불 테러 관련자는 군이 자체 판단해 공격하라는 ‘그린 라이트’(green light·승인 권한)다. “끝까지 추적해 보복하라”는 지시를 내린 지 하루 만에 작전권까지 더했다. 대규모 사상자 발생으로 안팎의 공격을 받는 바이든 대통령의 다급함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익명을 요구한 미 국방부 관계자는 “대통령 지시는 ‘일단 하라’(just do it)는 것이다. 우리는 (타깃을) 찾는 데로 공격할 것”이라고 정치 전문매체 폴리티코에 말했다.
아프가니스탄 20년 전쟁 종식이 사흘 앞으로 다가오면서 테러에 대한 긴장감은 극도로 높아지고 있다. 미군은 테러를 기획한 IS-K 지도부 응징 사실을 밝혔지만, 동시에 “추가 테러 위협”도 경고했다. 카불 주재 미 대사관도 “구체적이고 신뢰할만한 테러 위협이 있다”며 공항 인근 시민들의 대피를 촉구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28일(현지시간) “극악무도한 공격에 연루된 이들이 누구든 계속 추적해 대가를 치르게 할 것”이라며 “이번이 마지막이 아니다”고 말했다. 앞서 미군은 카불 공항 입구 테러에 대한 응징 공습을 통해 테러 조직 IS-K 고위급 2명을 제거했다고 밝혔다.
이날 공습은 ‘오버 더 호라이즌’(over the horizon·지평선 너머) 작전의 일환이었다. 오버 더 호라이즌은 미군이 아프간 철수 후에도 대테러 대응이 가능하다며 내세운 전략이다. 고도의 감시망을 통해 원거리에서 테러리스트에 대한 핀셋 타격을 감행하는 방식이다.
실제 이번 공습에는 무인 드론 ‘MQ-9 리퍼’와 초정밀 암살용 미사일 ‘헬파이어 R9X’가 사용됐다. 헬파이어 미사일은 불활성 탄두를 탑재하고 있다. 탄두가 터지지 않고 날카로운 금속 파편 등을 떨어뜨려 목표물만 제거하는 방식으로 설계돼 있다. 민간인 등 의도하지 않은 사상자 발생을 피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테러 위협은 더욱 높아졌다. 일부 전문가들은 극단주의 세력들의 연쇄 테러로 이어질 우려까지 제기했다. 세력이 약화한 테러집단들이 존재감을 드러내기 위해 경쟁적으로 활동을 재개할 수 있다는 것이다. IS-K의 카불 테러가 내전의 신호탄이라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크리스토퍼 하니쉬 전 국무부 대테러 부조정관은 “IS-K의 자살테러는 탈레반에 대응하려는 일격”이라며 “진정한 목적은 신병을 모집하고 조직력을 키우기 위한 것”이라고 폭스뉴스와 인터뷰에서 말했다. 그는 “IS-K는 탈레반이 안보를 제공할 수 없다는 것을 세계에 보여줘 신뢰성을 훼손하는 것이 목표”라며 “이번 공격은 지하디스트 지망생들을 향한 거대한 선전의 승리”라고 덧붙였다.
파이낸셜타임스도 “유엔 보고서는 탈레반과 미국의 거래를 IS-K가 이용할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며 “테러를 통해 자신들을 강력한 저항자로 드러내며 새로운 용병과 자금을 유치하려는 것”이라고 보도했다. 탈레반이 국제 사회 지지를 얻기 위해 유화적인 대책을 쏟아내는 동안 IS-K가 테러를 통해 존재감을 드러내려 한다는 것이다. 탈레반은 이날 미국의 보복 공습에 대해 “명백히 아프간 영토에 가해진 공격”이라며 비판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성명에서 “현장 상황은 계속 극도로 위험하고 공항 테러 위협은 여전히 크다. 군 지휘관들은 24∼36시간 내 공격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했다”고 우려했다.
미국은 카불에서 본격적인 철군 작업을 시작했다. 뉴욕타임스(NYT)는 “철수 기한이 사흘 남은 상황에서 임무가 아프간 시민들 대피에서 병사들의 철군 작업으로 옮겨가고 있다”고 보도했다. NYT는 “공항으로 연결되는 도로는 폐쇄됐고, 대부분의 게이트는 닫혀 있었다. 공항에서 대피 노력이 느려지고 있다는 신호”라며 “카불 공항의 미군은 ‘후퇴’를 언급하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워싱턴포스트(WP)도 “카불에서 가족을 구하려는 미국의 아프간 시민들에게서 희망이 줄어들고 있다”고 보도했다.
워싱턴=전웅빈 특파원 im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