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레반, 공항서 채찍질…현지인 조력자 구타하기도”

입력 2021-08-28 05:00
27일(현지시간)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 공항에서 한 탈레반 병사가 폭탄테러 현장을 경비하고 있다. 카불 공항 외곽에서는 전날 두 건의 자살폭탄 테러와 총기 난사 사건이 발생해 미군 13명을 포함해 100여 명이 사망했다. 연합뉴스

“탈레반이 아프간 조력자들을 태운 버스의 카불 공항 진입을 14시간가량 막으면서 꼬박 밤을 샜다. 그 순간이 가장 힘들었다”

김일응 주아프가니스탄 공사참사관은 아프간 조력자 390명을 국내로 이송하는 과정에서 가장 힘들었던 순간을 묻자 이렇게 답했다. 김 참사관은 27일 외교부 출입기자단을 대상으로 가진 화상 간담회에서 긴박했던 작전(작전명 ‘미라클’) 상황을 전했다.

그는 “미국과 조율해 버스가 (공항) 정문을 통과하는 시간을 24일(현지시간) 오후 3시30분으로 받았지만, 탈레반이 ‘조력자의 여행증명서가 원본이 아닌 사본’이라며 시비를 걸며 버스의 정문 통과를 14시간 가까이 막았다”며 “‘원본을 들고 그 쪽으로 가겠다’고 하자 그제서야 버스를 통과시켰다”고 했다. 조력자들이 공항에 진입하려면 여행증명서가 필요했다.

공항 정문의 안쪽은 미군이, 바깥쪽은 탈레반이 장악하고 있었다. 그는 “공항 게이트마다 탈출을 원하는 아프간인이 수천명씩 붙어있고 탈레반이 채찍질을 하며 쫓아내는 상황”이라고 부연했다.


그는 “에어컨도 나오지 않고, 버스 창문이 밖을 볼 수 없게 돼 있어서 사람들이 굉장히 불안해 했다. 조력자 중 한 사람은 탈레반에게 구타를 당한 모습이었다”며 “25일 새벽녘에 버스가 공항 안으로 들어왔고 사람들은 사색이 된 채 버스에서 내렸다”고 했다. 김 참사관은 순간 감정에 북받친 듯 울먹이기도 했다.

김 참사관은 “15시간 가까이 갇혀 있다가 나온 사람들에게 물과 음식을 줄 수 없다는 게 미안했다. 공항 내 상점 모두 문을 닫았기 때문이다. 저를 비롯해 카불에 들어간 공관원들 모두 굶었다”면서도 “모든 것을 함께 한다는 생각으로 서로 의지했다”고 했다.

김 참사관이 공항에 도착한 현지인을 포옹하는 모습이 포착된 사진 한 장이 앞서 공개되면서 화제가 됐다.

김일응 주아프가니스탄 공사참사관이 24일 카불 공항에서 재회한 대사관 현지 직원을 포옹하고 있다. 외교부 제공

그는 “사진 속 현지인은 우리 대사관 정무과에서 행정직원으로 함께 1년 동안 일했던 친구”라며 “(조력자들 중) 특히 이 친구의 얼굴이 상해 마음이 아팠다. 그 친구뿐만 아니라 다른 친구들도 반가워서 포옹했다”고 설명했다. 김 참사관으로서는 “다시 돌아오겠다”는 약속을 지킨 것이다.

그는 “미국 등 서방 선진국들이나 하던 작전을 성공시켜 우리 국격·책임을 보여준 것 같아 기쁘다”고 했다.

테러 발생한 ‘애비 게이트’ , 일부 조력자 이용

26일(현지시간)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 공항 외곽에서 발생한 연쇄 자살폭탄 테러로 부상한 시민들이 인근 병원으로 옮겨져 침상에 누워 있다. 탈레반의 정권 장악 이후 서방 국가의 대피 작전이 긴박하게 이뤄지던 카불 공항 인근에서 이날 이슬람국가(IS) 소행의 연쇄 자살폭탄 테러로 인해 대규모 사상자가 발생했다. 연합뉴스

작전이 지연됐다면 인명피해가 발생할 수 있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자살 폭탄 테러가 일어난 곳 중 하나인 ‘애비 게이트’를 통해 일부 조력자가 공항으로 들어온 것으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김 참사관은 “정문은 어차피 걸어서는 못 가고 다른 데는 막히거나 통제하고 있어 그나마 동문과 애비 게이트 두 곳이 낫다고 했다”며 “여기도 계속 열렸다 닫혔다 하지만 우선은 애비 게이트로 하고 동문도 해보자고 (조력자들에게) 공지했다”고 했다.

실제로 조력자 중 26명은 ‘애비 게이트’를 이용해 지난 23일 공항으로 들어온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는 23일 밤 이슬람국가(IS)의 테러 첩보를 입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시 카불로…“우리 아니면 할 사람 없기 때문”

김 참사관은 지난 17일 현지에 남아있던 마지막 교민 한 명과 함께 우방국 비행기에 올라 아프간에서 철수했다. 철수 닷새 만에 탈레반이 사실상 점령한 아프간에 다시 들어간 것이다.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의 국제공항에서 26일(현지시간) 고국을 벗어나려는 아프간인들이 공항 경비 미군에게 신원증명서를 보여주며 탈출 지원을 호소하고 있다. 미국과 동맹국은 이달 말 철군 시한을 앞두고 대피 작전을 서두르는 가운데 이날 폭탄테러가 발생해 미군 13명을 포함해 모두 100여 명이 숨졌다. 연합뉴스

그는 이에 대해 “우리가 들어가지 않으면 (조력자들의) 신원을 확인할 사람도, (이 작전을) 대행할 사람도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본부(외교부)로서는 한국인 (인명) 피해를 우려할 수밖에 없는데, 결심을 해줘 다행이었다”며 “되든 안 되든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강조했다. 특히 그는 류부열 경호단장과 고관옥 아랍에미리트(UAE) 무관 등에게 공을 돌렸다. 류 단장은 “아이들이 다 컸으니 (카불에 들어가도) 괜찮다”며 이번 작전에 참여했다고 한다.

김 참사관도 카불에 다시 들어가는 사실은 자녀들에게 알리지 않았다.

그는 “아내와 4년 전 사별해 딸만 둘이 있다. 딸들이 걱정할까 봐 아예 말을 하지 않았다”며 “통화를 했는데, ‘아빠 뉴스에 나오던데 카불에 갔다 왔냐’고 물으며 ‘아빠도 참...’이라고 말하더라 엄마 없이도 씩씩하게 잘 자라줘서 고맙다”고 했다.

“조력자들 탈레반 두려워 탈출…우리 사회 기여할 것”

아프가니스탄에서 한국 정부 활동을 도왔던 현지인 직원 및 가족 중 파키스탄에 남아 있던 나머지 인원들이 27일 오후 우리군 수송기로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한 뒤 입국장을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그는 국내로 들어온 조력자들을 향한 우려 섞인 시선에 대해 “(조력자들은) 바그람 미군기지와 차리카 기지 등에서 7~8년 동안 근무를 했던 분들이며 미군 기지에서 근무하셨던 분들은 미국도 신원 조회를 했다”며 “보안에 문제가 있다면 탈레반을 피해서 우리나라로 오지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과거 한국을 도왔던 아프가니스탄 협력자와 그 가족들을 태운 버스가 27일 오후 충북 진천 국가공무원인재개발원로 들어서며 차장 밖으로 손 흔들고 있다. 이들은 이곳에서 약 6주간 생활하며 한국어와 한국 문화 등 사회 적응을 위한 교육을 받을 예정이다. 연합뉴스

그러면서 “국민들이 따뜻한 마음을 보여주신 데 감사하다. 특히 진천 주민들께서 이해해주신 데 대해 감사하다”며 “우리가 아메리칸 드림을 갖고 (미국에 이민을 가) 해낸 것처럼 이들도 그런 역할을 충분히 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파키스탄 이슬라마바드에 남아있던 조력자 13명이 이날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추가 입국하면서 ‘미라클’ 작전은 종료됐다. 이번 작전을 통해 국내에 들어온 아프간 조력자는 총 390명이다. 당초 391명에서 한 명이 줄어든 데 대해 외교부는 “명단에 없던 1명을 발견해 카불의 미군에 신병을 인계해 실제 입국자는 모두 390명”이라고 설명했다.

손재호 기자 sayh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