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불 탈출 英수송기 ‘사람>화물>동물’ 우선순위 논란

입력 2021-08-27 02:21
펜 파딩은 영국 해병 출신이자 동물보호단체 나우자드의 설립자이다. Nowzad 홈페이지 캡쳐

무장세력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을 재장악한 뒤 아프간 탈출 러시가 이어지는 가운데 영국에서 사람과 동물, 화물의 이송 우선순위를 둘러싸고 논란이 벌어졌다.

지난 24일(현지시각) 영국 스카이뉴스 등에 따르면 이번 논란은 영국 해병 출신이자 동물보호단체 ‘나우자드(Nowzad)’의 설립자 펜 파딩(Pen Farthing)이 계획한 동물 이송 작전을 군 당국이 저지하면서 촉발됐다.

파딩은 수의사, 구조대원, 동물보호단체 관련 직원 60여명과 동물 200여 마리를 구출하기 위해 크라우드 펀딩을 받아 민간 전세기를 마련했다. 그러나 군 당국은 이 같은 파딩의 계획을 허용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파딩은 “동물들의 군 수송기 탑승을 보장할 수 없다고 해서 민간 전세기를 예약했는데도 군이 전세기의 이착륙을 불허했다”면서 “동물은 군의 우선순위가 아니라는 이유로 적군의 영토에 남겨졌다”고 반발했다.

이에 벤 월레스 영국 국방부 장관은 “탈레반의 표적은 동물이 아닌 사람인데 매우 절박한 사람들이 현실적인 위협에 놓여있다”며 “반려동물이 아닌 사람을 우선시하는 것이 우리의 기본적인 입장”이라고 밝혔다. 또 “부정확한 이야기와 로비로 카불 공항 현지 군인들이 피난민 대피 작전에 방해를 받고 있다”며 “이는 분노할 일이다”라고 토로했다.

벤 월레스 영국 국방부 장관은 "절박한 상황의 사람을 우선순위로 이송하는 것이 우리의 기본적인 입장"임을 밝히고 있다. 영국 스카이뉴스 캡쳐

영국군이 파딩의 계획을 불허한 후, 차량을 실은 영국군 수송기 내부 사진이 공개되면서 누리꾼 사이에서 월레스 장관에 대한 비판이 쏟아졌다. 영국의 한 언론이 수송기 내부의 영상을 공개했는데 한가운데에 자동차 한 대가 사람들에 둘러싸인 모습이 포착됐기 때문이다.

영국군 수송기에 차량 한 대가 실려 있고 그 주변으로 사람들이 앉아 있다. 영국 스카이뉴스 캡쳐

공개된 영상을 두고 누리꾼들은 “군의 주장대로라면 동물보다 자동차가 우선한다는 것”이라며 비난을 쏟아냈다. 이에 영국 국방부 대변인은 “당시 134명의 탑승자를 태우고, 더 많은 사람을 이송하려고 이륙 직전까지 기다렸는데 (사람들이 타지 못해) 여유 공간이 생겼다”며 “철수기한 내 화물과 장비까지 옮겨야 하는 상황이어서 차를 실은 것”이라고 해명했다.

그럼에도 비판 여론이 지속하자 영국 군 당국은 태도를 바꿨다. 현재 아프간을 탈출하려는 사람들이 탈레반 검문소를 뚫고 카불 공항까지 무사히 진입하는 것이 관건이니, 파딩이 동물을 데리고 공항에 도착한다면 민간 전세기를 허용하겠다고 한 것이다. 다만 민간 전세기가 아닌 군 수송기에 동물을 태울 수 없다는 기존 입장은 고수했다.

동물들은 신호만 받으면 이동할 수 있도록 케이지에 들어있는 상태인 것으로 전해졌다. Dominic Dyer 트위터 캡쳐

현재 파딩은 직원들과 동물들을 데리고 공항으로 향하고 있으나 카불 곳곳에 탈레반이 검문소를 설치하고 피란민이 몰려 공항에 진입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펜 파딩은 민간전세기를 이용해 관련 직원들과 동물들을 이송할 수 있게 되었다. 펜 파딩 트위터 캡쳐

천현정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