젖병까지 치밀한 ‘미라클’… 아프간人 378명 무사 도착

입력 2021-08-26 17:27 수정 2021-08-26 17:44
아프가니스탄 협력자와 그 가족들이 26일 오후 우리 공군 수송기에 탑승해 인천공항에 도착한 후 보안구역으로 이동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아프가니스탄 현지에서 한국 정부에 협력했던 아프간인과 가족 378명이 26일 한국 땅을 밟았다. 정부가 분쟁 지역 외국인을 대규모로 받아들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아프간인 국내 이송 작전은 군사작전처럼 긴박하게 진행됐다. 아프간인들에게 새 희망을 준다는 취지에서 작전명 역시 ‘미라클(기적)’로 명명됐다. 작전에 들어가기에 앞서 카타르로 철수했던 한국대사관 직원 등이 지난 22일 아프간 카불 공항에 다시 진입해 사전 준비에 들어갔다.

아프간인 300여명을 태운 버스를 카불 공항에 무사히 도착시키는 것이 작전 성공의 최대 고비였다. 정부는 탈레반과 협약이 돼 있는 미군 도움을 받아 탈레반 검문소를 무사히 통과할 수 있었다. 김만기 국방부 정책실장은 이날 오전 CBS 라디오에서 “이렇게 기적이 일어나는구나 하고 생각했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정부는 지대공 미사일을 회피할 수 있는 공군 C-130J(슈퍼 허큘리스) 수송기 2대와 KC330(공중급유수송기) 1대를 지난 23일 파키스탄 수도 이슬라마바드 공항에 투입했다. 수송기에는 영유아를 위한 분유, 젖병도 실었다. 군 수송기는 카불과 이슬라마바드를 왕복하며 아프간인 391명 전원을 카불에서 탈출시켰다. 이중 378명이 26일 오전 4시53분쯤 군 수송기를 타고 이슬라마바드를 출발해 한국으로 출발했고 11시간의 비행 끝에 이날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했다. 나머지 13명은 27일 입국할 전망이다.

아프간인 391명 중 영유아가 100여명이고 절반 이상이 미성년 자녀들이다. 태어난 지 한 달이 안 된 신생아도 3명이다. 아프간 조력자들은 한국 대사관, 한국 병원, 한국 직업훈련원 등에서 의료진, 강사, 대사관 행정원 등으로 일했다. 한국어를 구사하는 사람도 있다. 박범계 법무부 장관은 이날 인천공항에서 “이들은 우리의 이웃”이라며 “포용적이고 의리감 넘치는 대한민국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도록 국민들의 이해와 지원을 당부드린다”고 말했다.

정부는 이들을 난민이 아닌 특별 기여자로 부르고 있다. 법무부는 이들에게 거주비자(F-2)를 주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난민보다 생계비 등에서 더 배려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다만 법 개정이 이뤄져야 한다. 법무부는 이날 대한민국에 특별 공로가 있는 외국인에게 거주비자를 주는 내용의 출입국관리법 시행령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거주비자를 받으면 제한 없이 취업 활동이 가능하고 5년 이상 체류 시 영주권(F-5)을 신청할 수 있다.

아프간인들은 공항 도착 직후 코로나19 유전자증폭(PCR) 검사를 받았다. 14일간 격리된 후 음성이 나오면 임시 숙소인 충북 진천 국가공무원 인재개발원에서 6주 정도 머무를 예정이다. 정부는 ‘탈레반이 연계된 위험 인물이 끼어들어왔을 가능성은 사실상 제로’라고 선을 그었다. 박 장관은 “신원 검증을 철저히 실시했고 앞으로도 계속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나성원 김영선 기자, 인천공항=전성필 기자 na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