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의 역사 속에서 돈과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그렇지 못한 사람들을 기만하고 괴롭히는 경우는 숱하게 목격됐다. 폭력성은 어느 곳에서든 어떤 형태로든 유지돼 왔다. 권력과 시스템 밖으로 밀려난 사람들은 저항하고 싸웠다.
남미 브라질에 가상의 마을 ‘바쿠라우’가 있다. 마을의 정신적 지주나 마찬가지였던 94세 할머니 카르멜리타의 장례식에 참석하기 위해 마을을 떠났던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들었다. 그 중엔 살인 혐의로 수배 중인 마을 출신 범죄자 룽가(실베로 페라라)의 행방을 알고 있는 유일한 인물 파코치(토마스 아퀴노)도 있다.
가족처럼 지내는 마을 청년들이 돌아왔지만 빈민촌 바쿠라우엔 식수마저 끊긴 상황이다. 인근 지역 세라 베르드의 토니 주니어(타르델리 리마)가 댐을 짓기 위해 한 짓이다. 지지를 요구하며 헌 책과 유통기한이 지난 약품을 들고 온 토니에게 주민들은 욕지거리를 해대고, 토니는 모욕감을 느끼고 돌아간다.
어느날부터 마을엔 정체불명의 사건이 계속된다. 누군가가 지도에서 마을을 지워버리고, 통신과 전기를 끊어버린다. 주민들이 마실 물이 담긴 식수차는 물탱크에 구멍이 나서 돌아오고, 마을 사람들은 계속 목숨을 잃는다. 정체불명의 외지인들은 마치 게임하듯 마을 사람들을 죽여나간다.
마을에서 놀던 9살짜리 아이까지 총에 맞아 숨진 채 발견되자 주민들의 분노와 슬픔은 극에 달한다. 파코치는 룽가를 데러오고, 마을 사람들은 힘을 모아 살인자들을 응징한다. 사람들은 자신의 사촌을, 아들을, 친구를 죽인 사람들이 토니가 고용한 ‘용병’이라는 것을 알게된다.
영화는 2019년 칸영화제 공개 당시 미스터리, 스릴러, 서부극, 공상과학(SF) 등 다양한 장르의 결합을 시도한 정체불명의 새로운 장르극으로 주목받았다. 브라질 전통무술 카포에이라와 비확인 비행물체(UFO)의 형상을 한 드론, 평화로운 장례식 풍경과 유혈이 낭자하는 도륙의 현장 등 이질적인 요소들이 끊임없이 뒤섞인다. 비평가들은 이를 ‘디스토피아적 서부극’이라는 장르로 규정하기도 했다.
영화 속에선 끊임없이 풍자와 비판이 등장한다. 미국과 유럽 출신 용병들의 폭력성과 비인간성을 보여주면서 풍자와 비판의 대상은 지역갈등과 빈부격차 등의 문제를 안고 있는 브라질 사회를 넘어 인종차별로 대표되는 서구 사회를 향한다. 용병을 마주친 도밍가스(소냐 브라가)는 폭력적인 세상을 향해 “우리한테 왜 이러는거예요?”라는 질문을 던진다.
마을 사람들뿐만 아니라 같은 편인 용병들마저도 아무 거리낌 없이 죽인 마이클(우도 키에르)은 토니를 처벌하는 마을 사람들을 보며 “지나치게 폭력적이군”이라고 고백한다. 벽에 남은 용병의 핏자국을 그대로 두라고 말하는 주민의 말에서 역사는 반복되고, 기록된다는 메시지가 읽힌다.
영화를 만든 클레베르 멘돈사 필류는 현재 가장 주목받는 브라질 감독이다. 그는 “‘바쿠라우’가 세계의 역사와 엮여지는 모습을 보는 게 흥미롭다”면서 “브라질에서 삶의 한 부분이 돼버린 폭력적인 사회에 도전을 제기하는 측면들이 있다”고 말했다.
‘바쿠라우’는 제72회 칸영화제 심사위원상과 제52회 시체스영화제 최우수 감독상·최우수 판타스틱상·비평가상, 제37회 뮌헨국제영화제 외국영화상 등 세계 유수 영화제에서 52관왕을 차지했다. 국내 개봉은 다음달 2일, 청소년 관람불가다.
임세정 기자 fish813@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