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드라인 다가오자 극도의 절망·공포”…수용소서 만난 아프간 난민

입력 2021-08-26 06:16 수정 2021-08-26 08:39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 사람들 탈출을 막겠다고 해서 공포와 절망감이 극에 달하고 있습니다. 31일까지 아프간을 모두 탈출하는 건 불가능해요.”

25일(현지시간) 미 버지니아주 샹티이 덜레스엑스포 센터에서 만난 샤짐(35)씨가 절박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는 아프간 카불 공항을 탈출해 미국으로 온 형제를 만나려고 엑스포 센터에 설치된 임시 난민 수용소를 찾았다.

아프간 난민을 태운 대형 버스 틈 사이에서 그는 간신히 형제 얼굴만 확인할 수 있었다. 당국 직원에게 “옷가지를 건네줄 수 있느냐”고 물었지만, 접촉이 금지된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형제들은 멀리서 서로 눈을 마주친 뒤 가슴에 손을 얹고 인사했다.

난민들이 머문 수용소 주변은 검은 가림막이 쳐 있었다. 가림막 주변에는 카불을 탈출한 가족과 친구들을 만나기 위해 무작정 짐을 싸 들고 온 아프간 사람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대부분 샤짐씨처럼 ‘혹시나’ 하는 마음에 수용소를 찾았다고 했다.

샤짐씨는 “탈레반이 미군 조력자를 찾아 집에서 끌어내고 총살하는 장면을 지인들이 목격했다”고 했다. 그는 아프간에 있는 지인, 이번에 미국으로 피난 온 형제가 전한 최근 상황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그에 따르면 최근 카불에서 탈레반 통제가 강화되면서 두려움이 극심하다고 한다. 샤짐씨는 “정당한 통행 서류를 들고 있는 사람들도 서구를 상징하는 청바지를 입었다는 이유로 채찍을 맞았고, 공항 이동을 거부당했다”며 “검문을 피하려는 사람들이 오물로 가득한 공항 주변 하수도를 건너 공항 울타리로 모여들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탈레반 지도부가 아프간인의 해외 탈출을 금지 지시를 내린 뒤 혼란이 더 심해졌다고 했다. 뉴욕타임스(NYT)도 “바이든 대통령이 정한 철수기한이 6일 앞으로 다가오자 필사의 탈출을 하려는 아프간 사람들이 공항 주변으로 대거 몰려오고 있다”고 이날 전했다.

샤짐씨는 “탈레반 지도부는 안전을 보장한다고 하지만 전사들은 여러 그룹으로 나뉘어 있고, 이들은 자기들 마음대로 행동하고 있다”며 “그들이 사람들을 때리고 죽여도 탈레반 지도부는 아무런 말을 하지 않는다”고 했다. 탈레반 지도부가 정당한 정부로 인정받기 위해 대외적으로 선전하는 유화정책이 현장에서는 전혀 먹혀들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실제 자비훌라 무자히드 탈레반 대변인도 이날 “우리 보안군은 여성들을 대하는 방법에 대해 훈련받지 않았다”며 “아프간 직장 여성들은 안전을 담보할 수 있는 적절한 시스템이 갖춰질 때까지 집에 머물러야 한다”고 발표했다.

친척을 만나기 위해 수용소로 왔다는 40대 여성은 “아프간 사람들은 모두 구출하겠다는 조 바이든 대통령의 말을 믿고 싶지만, 현실은 절박하다. 구조 기한을 더 늘려야 한다”고 호소했다.

이들과 대화를 나누는 동안 난민을 태운 새로운 전세버스가 막 수용소에 도착했다. 일주일 전쯤 카불을 떠나 이날 덜레스 공항에 도착한 난민들이다. 버스에서 내려 수용소로 들어가는 난민들은 상당수가 짐이 전혀 없었고, 일부는 배낭만 겨우 메고 왔다.

티셔츠 차림에 슬리퍼만 신은 지친 모습에서 고단했던 탈출 여정을 유추해볼 수 있었다. 이들 표정에는 공포에서 벗어났다는 안도감과 카불에 남은 사람들에 대한 염려 등이 교차한 복잡한 심경이 묻어났다. 아이를 안고 온 한 남성은 당국 직원을 향해 “감사하다”고 말했다.

버스에서 내린 아이들 일부는 천진난만한 모습도 보였다. 수용소가 답답했는지 엑스포 센터 주변을 지키는 군인에게 “주차장에 다녀올 수 있느냐”고 묻기도 했다.

센터 외부를 통제하는 직원들은 “피난민들이 많이 지쳐있지만, 건강 상태는 나쁘지 않다”고 했다. 한 직원은 “모두 코로나19 검사도 마쳤다. 이곳에서 며칠 기다린 뒤 미국에 있는 지인들에게 가거나, 다른 수용소로 이동한다”고 말했다.

수속을 마친 난민은 위스콘신주 포트 맥코이, 버지니아주 포트 리, 뉴저지주 맥과이어딕스·레이크허스트 합동기지, 텍사스주 포트 블리스 등 미군 시설로 이동한다.

미 국방부는 지난 24시간 동안 카불에서 약 1만9000명이 대피했다고 밝혔다. 지난 14일 이후 미국이 탈출시킨 사람은 8만2300여 명에 달한다.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아프간에 남아 있는 미국인이 최대 1500명 정도라고 밝혔다. 그는 “지난 14일 기준 아프간을 떠나기 원하는 미국인이 6000명 정도였고, 이 중 4500명을 대피시켰다”며 “500명은 지난 24시간 안에 탈출 방법을 지시받았다”고 말했다. 나머지 1000명에 대해서는 “이미 아프간을 떠났거나 실제 미국인이 아닌 경우가 있고, 일부는 남아있기로 했을 수 있다”며 “실제 숫자는 그보다 적을 것”이라고 말했다.

블링컨 장관은 “아프간을 떠나기를 원하는 미국인이나 아프간 조력자를 돕는 작업은 ‘데드라인’(마감)이 없다”며 “그런 노력은 8월 31일 이후에도 매일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외신들은 여전히 특별이민비자(SIV) 자격을 갖춘 아프간 사람들 수만 명이 대피를 기다리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에 젠 사키 백악관 대변인은 “31일까지 아프간을 떠나기를 희망하는 특별이민비자(SIV) 신청자 수에 제한이 없다”고 말했다.

워싱턴=전웅빈 특파원 im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