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7개국(G7) 정상들이 24일(현지시간) 미국이 정한 아프가니스탄 철수 기한(8월 31일) 연기를 논의했지만, 합의를 도출하지 못했다.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은 “탈레반과 이슬람국가(IS)의 보복, 테러 공격 위험이 너무 크다”며 철수 기한을 유지하기로 했다.
미국이 철수 기한을 고수하기로 하면서 G7 정상회의는 탈레반에 안전한 대피 협조를 요청하는 수준의 성명 발표 외에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하고 끝났다.
반면 탈레반은 아프간 시민의 탈출을 더 이상 허용하지 않기로 했다. 외국인만 카불을 떠날 수 있다는 것이다. 미국과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NATO) 등에 조력해 온 아프간 시민 수만 명의 탈출에 빨갈 불이 켜졌다.
“미군, 카불 철군 시작”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오후 백악관에서 G7 정상회의 내용을 설명하며 “미국이 8월 31일까지 아프간에 대한 20년간의 군사 개입을 끝내기로 했다”고 밝혔다. 그는 “지금까지 7만 명 이상의 사람들이 후송됐다. 31일까지 마무리하기 위해 박차를 가하고 있다”며 “빨리 끝낼수록 좋다”고 덧붙였다.앞서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G7 정상 회의에서도 “카불에서의 우리 임무는 목표 달성에 따라 종료될 것”이라고 말했다고 젠 사키 백악관 대변인이 전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7분간 연설에서 “31일까지 (철수를) 완료하기 위해 미국이 속도를 내고 있다”고 강조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다만 목표 달성을 위해서는 피란민들의 공항 접근을 허용하는 등 탈레반의 지속적인 협조가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또 G7 정상들에게 “매일 IS-K의 위협이 증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시한 연장이 필요한 상황을 대비해 일정을 조정할 수 있는 비상 계획을 국방부와 국무부에 지시했다고 밝혔다. 일단 마감 시한을 맞추기로 한 기존 입장을 유지하되 대피 상황이 달라지면 연장 가능성이 있음을 시사한 것으로 외신들은 분석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기존 시한을 고수해야 한다는 미 국방부 권고를 수용해 이 같은 입장을 동맹국에 전했다고 AP통신, 로이터통신 등이 보도했다. 익명을 요구한 미 소식통은 “카불 공항에서 IS 대원들의 자살폭탄 테러에 대한 우려가 증가하고 있다”고 말했다고 한다.
G7 논의에 정통한 미 관계자는 바이든 대통령이 회의에서 “탈레반이 통제하는 나라에서 위험이 매일 커지고 있다”고 우려했다고 한다.
워싱턴포스트(WP)는 “대피 임무에 필요하지 않은 일부 부대가 이미 철수했다”는 미 국방부 관계자 발언을 보도했다. 마감 시한이 1주일도 채 남지 않은 상황이어서 미군 일부가 이미 철수 작업을 시작했다는 것이다.
탈레반, “아프간 시민은 못가”
자비훌라 무자히드 탈레반 대변인은 그러나 이날 기자회견을 열고 “외국인들은 공항으로 이동할 수 있지만, 아프간 시민들은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래야 보복을 당하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했다.무자히드 대변인은 “우리는 더 이상 아프간인의 대피를 허용하지 않는다. 의사와 학자들은 이 나라를 떠나서는 안 되며, 자신의 전 분야에서 일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조력자 구조가 또 다른 불씨로 떠올랐다. 존 커비 국방부 대변인은 이날 “이번 주말까지 최대 10만 명을 추가 대피시킬 수 있다”고 밝혔다. 그는 미국인을 대피시킬 시간은 충분하다고 했지만, 위험에 처한 아프간 사람들의 대피 완료에 대해선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았다고 AP는 보도했다. 로이터 역시 위험에 직면한 수천 명의 아프간인이 모두 대피할 수 있을지 불분명하다고 전했다.
제이크 설리번 국가안보보좌관은 전날 기자들에게 “미국인을 구할 시간이 있다고 믿는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문제에 정통한 한 내부 관계자는 “미국인 대피에만 초점이 맞춰졌을 것”이라고 말했다고 CNN이 보도했다.
성과 못 얻은 유럽
샤를 미셸 유럽연합(EU) 정상회의 상임의장은 G7 회의 후 “EU 시민, 우리와 신뢰 관계를 맺은 사람들이 카불 공항에 안전하게 도착할 수 있을지 걱정된다”며 “공항으로 가려는 모든 외국인과 아프간 시민에게 자유로운 통행을 허용할 것을 아프간 당국에 요청한다”고 밝혔다.그는 “탈레반과 어떤 관계를 발전시킬지 결정하기에는 너무 이르다”며 “테러를 방지하고, 여성과 소녀, 소수자 인권 보호에 기여하는 등의 행동과 태도에 달렸다”고 덧붙였다.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는 “탈레반이 8월 31일 이후에도 원하는 사람은 안전하게 출국할 수 있도록 통로를 보장해야 한다는 데 G7 회원국이 동의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G7이 상당한 경제적, 외교적, 정치적 지렛대를 가진 만큼 탈레반이 이 제안을 수용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영국, 프랑스, 독일 등은 G7 회의를 앞두고 미국 측에 “기한 내 철수를 마무리하기 어렵다”며 공개적으로 연기를 요청했었다. 유로뉴스는 “유럽 지도자들이 바이든 대통령 설득에 실패했다”고 평가했다. 가디언은 “바이든 대통령이 G7 회의에서 상처 난 유럽과의 관계에 소금을 뿌렸다”고 비판했다.
워싱턴=전웅빈 특파원 imu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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