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간첩이 USB 흘리고 스타벅스서 만납니까” 항변

입력 2021-08-23 18:07


‘청주간첩단 사건’ 피의자들이 북한 공작원과 접촉 방식으로 지목된 ‘택시·식당 접선’ ‘스타벅스 접선’ 자체가 말이 안 된다고 주장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남의 이목 속에서 지령 하달이 이뤄졌다고 보기 힘들고, 무엇보다 북한 공작원이 중요한 만남 장소를 미국을 상징하는 다국적 거대기업으로 택했다는 것을 이해하기 어렵다는 주장이다. 피의자들은 중국에서 2만 달러의 공작금을 수령했다는 혐의에 대해서도 “그렇다면 왜 입국 당시 수사받지 않았느냐”고 반문한다.

이들의 입장은 결국 ‘자생적 북한 추종 세력’으로 볼 수 있다 하더라도 ‘간첩단’이라 말하긴 어렵다는 변론으로 풀이된다. “USB를 흘리는 허술한 간첩이 어디 있느냐”는 말도 나왔다. 반면 국가정보원은 이들을 ‘확신범’으로 판단한다. 해외 회합과 매월 하달된 공작 지령 이행 등이 증거로 입증되며, 통신 분량도 전례 없이 많다는 것이 국정원의 수사 결과다. 사건을 넘겨 받은 검찰은 추가 수사를 통해 혐의 다지기에 나설 방침이다.

23일 국민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자주통일 충북동지회’ 측은 국정원이 사진 촬영 등으로 특정한 총책 박모(57·구속)씨의 2017년 5월 중국 택시 접선, 부위원장 윤모(50·여·구속)씨의 2018년 4월 캄보디아 식당 접선에 대해 “장소에 비춰 과연 북한 공작원과의 만남이겠느냐”고 주장한다. 동지회 측은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 때 박씨의 혐의에 대해 “대화가 택시기사에게 고스란히 노출되고 국정원이 촬영 후 택시기사를 조사할 수도 있는 상황에서 21분간 남한 정세, 지하조직 결성 관련 대화가 오갔다는 것을 믿기 어렵다”고 항변했다. 주변에 사람이 없는 곳을 택하지 않았겠느냐는 것이다.

윤씨의 혐의에 대해서는 “과연 미국의 상징 격인 스타벅스를 갔겠느냐”는 항변도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사상 교육’ 장소로 적합하지 않다는 것이다. 국정원은 윤씨가 캄보디아 프놈펜에서 첫날에는 식당, 이튿날에는 스타벅스 등 커피숍 2곳에서 북한 공작조를 만나 조직원 임무를 협의한 것으로 파악했다. 동지회 측은 영장 심사 때 “스타벅스를 찾는 공작원이 있다면 북한에서 먼저 처벌받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다. 이들의 변호인은 국민일보에 “북한 공작원들은 미 제국주의의 속박에서 벗어나겠다는 것이 기본 자세”라고 말했다.

동지회 측은 연락 담당인 또 다른 박모(50·여·구속)씨가 2019년 11월 중국 심양 월마트 무인함에서 미화 2만 달러를 수령해 김포공항으로 입국했다는 금품수수 혐의에 대해서도 부인한다. “들어올 때 잡혔을 텐데 그러지 않았고, 따라서 거액을 갖고 들어왔다고 볼 수 없다”는 주장이다. 이미 ‘요시찰’ 상태인 박씨 등이 무인함에서 뭔가를 꺼낸 사실이 포착됐다면 공항에서 즉각 체포됐어야 하지 않느냐는 반론이다. 그만한 액수의 외화를 갖고 신고 없이 입국하는 일부터 불가능하다고 동지회 측은 맞선다.

수사 이후 동지회 내부는 분열 조짐이 있다. 4명 중 3명은 연락 담당 박씨가 국정원의 프락치(신분을 속이고 몰래 활동하는 사람)였다고 주장하고, 박씨는 프락치가 따로 있다고 주장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전담팀을 꾸린 청주지검은 추가 수사를 계획하고 있다. 검찰 관계자는 “피의자들이 각자 주장을 펼친다는 것은 안다”며 “수사 방향은 말할 수 없다”고 했다.

이경원 구승은 기자 neosar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