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의 일본처럼 되지 않으려면 HMM 문제 해결을 위해 청와대가 나서야 한다. 이건 한국해운 산업 전체가 걸린 문제다.” 한종길 성결대 글로벌물류학부 교수는 HMM 해상노조(선원노조)가 파업 찬반투표를 가결하고 경쟁사로의 단체 이직을 선언하자 이 같은 우려를 드러냈다.
HMM이 점차 파업에 가까워지는 모양새다. 2차례 진행된 중앙노동위원회 조정에서 끝내 입장차를 좁히지 못한 HMM 해상노조가 23일 진행한 파업 찬반투표에서 투표자의 92.1%가 찬성하며 파업을 가결했다. 전체 조합원 453명 중 434명(95.8%)이 투표에 참여했다. 해상노조는 오는 25일쯤 단체 사직서를 제출하고 스위스 해운업체 MSC로 단체 지원서를 제출한다는 계획이다.
전정근 HMM 해상노조위원장은 “남은 선원들이 가정을 잃어가면서 한국 해운물류 대란을 틀어막았지만 그만한 해상노동의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며 “가정을 지키기 위해 MSC로 이직을 위한 단체 사직서를 제출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선원법에 따라 운항 중인 선박이나 외국 항구에 정박해 있는 선박에서는 쟁의행위를 할 수 없도록 돼있자 선택한 방법으로 보인다. 이뿐 아니라 세계 2위 해운사인 MSC가 최근 몸집을 불리면서 한국인 선원 채용 공고를 내놓기도 했다. MSC는 HMM 평균 급여의 2배 수준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대규모 인력 이탈이 이뤄질 경우 현재의 물류난 심화뿐 아니라 HMM을 비롯, 우리나라의 해운 산업 경쟁력이 흔들리게 될 수도 있다는 점이다. HMM의 사업보고서를 보면 해상직 직원들의 근속연수는 계속해서 줄어들고 있다. 2016년 8년에 가까웠던 근속연수는 이후 7년, 6년으로 계속 짧아지며 올해 6월 말 기준 4.7년까지 줄어들었다. 선원 수는 늘었지만 경험이 많은 베테랑 선원들은 점차 줄어든 것이다.
한 교수는 이런 현상을 두고 크게 걱정했다. 그는 “최근 일본 배에서 사고가 많이 나고 있다. 그 배에 일본 선원이 한 명도 없어 커뮤니케이션이 제대로 안됐기 때문”이라며 “우리나라도 그렇게 되지 않으려면 한국 선원들을 잡는 게 장기적으로 낫다고 본다”고 말했다. 지난 11일 일본 해역에선 일본 해운사가 운용하던 ‘크림슨폴라리스호’가 두 동강 나며 기름이 유출되는 사고가 발생했고, 지난해 7월 역시 일본 해운사가 운용하던 ‘와카시오호’가 모리셔스 해상에서 좌초해 기름 1000t이 유출됐었다.
최근 상하이, 홍콩 등에서의 선박 적체가 증가하고 있어 선복난이 심해질 것이란 우려도 커지고 있다. 지난 20일 기준 SCFI(상하이컨테이너운임지수)는 15주 연속 상승하며 4340.18포인트를 기록했다. 정연승 NH투자증권 연구원은 “HMM의 파업이 현실화되면 국내 기항한 선박들의 출항 지연이 이어지면서 선복난이 심화될 수 있다”고 했다. 한 교수는 “HMM이 파업하는 순간 국내 화주들부터 HMM을 이용하지 않을 것이고 이건 해외 화주들도 마찬가지”라며 “이렇게 망가진 걸 다시 살리기까진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앞서 HMM 사측은 육·해상 노조에 임금 8% 인상과 격려금 300%, 생산성 장려금 200% 지급을 골자로 하는 안을 제시했다. 이에 노측도 마지막 조정에서 임금 8% 인상과 격려금 800%를 제시하며 한 발 물러섰지만 사측이 이를 거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해원노조는 “사측에서 전향적인 안을 가지고 온다면 다시 협의가 가능하다”며 대화의 가능성을 열어뒀다.
정진영 기자 yo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