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강석 목사(새에덴교회, 예장합동 총회장)
아프가니스탄 사태로 온 세계가 떠들썩하다. 이 일이 어찌 남의 일이겠는가. 그 사건을 보면서 역시 지도자는 강해야 한다는 것을 느꼈다. 탈레반까지 화전양면 전략을 구사하는 것도 보았다. 겉으로는 여성 인권을 존중하겠다고 하면서 부르카를 입지 않았다고 총살을 하고, 휴대전화에 성경 어플이 깔린 것만 발견해도 사살하는 참극을 벌였지 않는가. 왜 바이든 행정부는 이런 재앙과 참극이 벌어질 판도라의 상자를 성급히 열어버렸는가.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서라는 분석이 힘을 얻고 있지만, 국제정치학에서 이러한 현상은 로버트 길핀의 패권전쟁이론으로 설명될 수 있다. 도전국이 빠르게 성장하여 패권국과 힘의 재분배가 일어나면서 전쟁이 발발하게 된다는 이론이다.
패권국은 안보라는 공공재를 제공하다가 점점 쇠락하게 되는데, 힘에 겨워하던 미국이 스스로 국제경찰 배지를 반납하면서 물러나는 상황인 것이다. 오늘날 미국이 동맹국들에게 국방비 인상을 요구하고 일본의 재무장을 독려하는 것도 비슷한 흐름이라고 볼 수 있다.
아프간 철군을 보면서 우리는 오늘날 한미동맹의 의미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보아야 한다.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의 연설문 작성자였던 마크 티센은 “한국 역시 미군을 철수해 버린다면 아프가니스탄처럼 순식간에 붕괴해버릴 것”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물론 나는 누구보다 한미동맹을 강조해온 사람이다. 15년 동안 한국전 참전용사 초청행사를 해왔고, 미국 백악관 상하의원을 방문할 때마다 혈맹으로 맺은 한미동맹을 철통같이 지켜야 한다고 주장하고 설득을 해왔다.
그러나 이번 미국의 아프간 철수는 모든 것을 동맹에 의존하는 프리라이더(free-rider) 국가의 최후를 보여주는 예가 되었다. 한미동맹도 자율성과 안보를 교환하는 비대칭 동맹을 벗어나, 이제는 서로 임무를 분담하고 우리의 역할을 다 할 수 있는 대등한 동맹 관계로 점차 발전해 나가야 한다.
한편으로 나는 이것을 한국교회의 현실과 대비하며 반면교사로 삼아보고 싶다. 지금 세계 국가들은 자국 이기주의로 가고 있다. 패권국인 미국 또한 자국민 보호를 우선한다는 미명아래 스스로 국제경찰 배지를 반납하는 무책임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생태계 원리로 보면 이것은 다 같이 망하는 길이다. 누군가는 자유민주주의와 인권을 수호하기 위한 리더십을 발휘해야 하고 질서 유지를 위해 희생해야 한다.
우리 한국교회도 마찬가지다. 지금 한국교회는 지도자가 없다. 한경직, 조용기, 김삼환 목사님으로 내려오던 계통이 무너지고 지도력의 공백기를 맞고 있다. 더구나 지도력을 행사하는 분들도 책임을 감당하거나 희생하려고 하지도 않는다. 개교회, 개교단 문제에만 신경 쓰지 한국교회 연합을 위한 공적 사역에는 책임을 지거나 십자가를 지려 하지 않는다. 아무리 잘해봐야 본전도 찾을 수 없는 현실이기 때문이다. 우리도 개교회나 개교단만의 이익을 추구하는 시대 흐름에 편승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되물어야 한다.
종교는 현실을 넘어 이상주의를 추구하는 것이다. 특히 기독교는 더 그래야 한다. 세상이 아무리 세력 간에 대립하고 계층, 이념, 지역 간의 갈등이 있더라도, 한국교회는 예수님의 사랑과 용서의 정신을 가지고 화해를 증폭시키고 용서를 확장시켜야 한다. 그리고 하나됨을 강조해야 한다.
기독교의 역사를 보라. 동로마가 왜 오스만 투르크에 망했는가. 러시아 정교회가 왜 볼셰비키 혁명에 망했는가. 서로 분열하고 싸우다가 망했다. 아프가니스탄 사태를 거울로 삼아 우리의 모습을 돌아보아야 한다.
지금은 다행스럽게 한국기독교총연합회와 한국교회연합까지 연합에 동참하기로 결정했다. 이제는 방향이 정해졌기 때문에 속도가 중요하다. 무리하게 속도만 강조해서도 안 되겠지만, 타이밍을 놓쳐서도 안 된다. 더 이상 개교단의 아성에만 머물러 있으면 안 된다.
연합기관은 신학을 다루는 곳이 아니다. 한국교회의 공적 대표성을 가지고 한국교회의 권익과 공익을 지켜내는 곳이다. 미국이 자국 이기주의 때문에 국제정치 리더십을 포기하면서 아프가니스탄이 얼마나 극도의 혼란 상태에 빠졌는가. 한국교회도 더 늦기 전에 연합기관이 하나 되어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해야 한다. 지금은 모든 교단이 한국교회 연합기관의 하나됨을 위해 마음을 모아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