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혈압 전단계라도 심장 동맥경화 위험 1.37배 ↑

입력 2021-08-23 10:57 수정 2021-08-23 11:10

고혈압은 각종 심·뇌혈관 질환의 주요 위험인자다. 한국에선 수축기 혈압이 140㎜Hg 이상이거나 이완기 혈압이 90㎜Hg 이상인 경우를, 미국에서는 130㎜Hg 이상이거나 80㎜Hg 이상일 때 고혈압으로 진단한다.

한국과 미국의 고혈압 진단 기준 사이에 해당하는 ‘수축기 혈압 130~139㎜Hg, 이완기 혈압 80~89㎜Hg(국내 기준 고혈압 전단계, 미국 기준 1단계 고혈압)’의 진단 및 치료에 대한 학계의 의견이 분분한 가운데, 고혈압 전단계와 관상동맥경화증의 상관관계에 대한 연구결과가 국내 의료진에 의해 발표됐다.

국내 기준으로 고혈압 전단계에 해당되는 사람들은 정상인에 비해 심장 동맥경화증 발생 위험이 1.37배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전세계적으로 고혈압 기준을 낮추고 있는 추세에서 국내 고혈압 기준 재설정에 대한 과학적 근거를 제시할 것으로 보인다.

서울아산병원 심장내과 이승환·이필형 교수팀과 세종충남대병원 심장내과 윤용훈 교수는 2007~2011년 아산병원 건강증진센터에서 관상동맥 컴퓨터단층촬영(CT)을 받은 수검자 중 심장질환이 없고 항고혈압제를 복용한 적 없는 4666명을 대상으로 연구를 진행해 이 같은 결과를 얻었다고 23일 밝혔다.

관상동맥경화증은 심장에 혈액을 공급하는 관상동맥 벽에 콜레스테롤이 쌓여 딱딱한 ‘경화반’이 생기고 이게 파열되면서 떨어져나온 혈전(피떡)으로 혈관이 좁아지거나 막히는 상태를 말한다.
관상동맥경화증이 생기면 심장에 산소와 영양분 공급이 어려워지면서 협심증, 심근경색, 심부전, 부정맥 등 심장질환을 일으킨다.

연구팀이 연구 대상을 미국 고혈압 가이드라인에 따라 정상군(120/80㎜Hg), 고혈압 전단계(120~129/80㎜Hg), 1단계 고혈압(130~139/80~89㎜Hg), 2단계 고혈압(140/90㎜Hg 이상)으로 나눠 분석한 결과, 관상동맥경화증 유병률은 정상 혈압군과 비교해 고혈압 전단계에서는 1.12배, 1단계 고혈압에서는 1.37배, 2단계 고혈압에서는 1.66배 높게 나왔다.

미국심장협회와 미국심장학회는 2017년 고혈압 진단 기준을 140/90㎜Hg에서 130/80㎜Hg으로 낮춘 반면, 유럽과 우리나라는 기존대로(140/90㎜Hg 이상) 유지하면서 전세계적으로 이슈가 됐다.
국내 기준으로는 고혈압 전단계로 분류되는 혈압이 미국 기준으로는 1단계 고혈압으로 분류되는 것이다.

미국이 고혈압 가이드라인을 개정한 근거는 2015년 발표된 ‘수축기 혈압 중재임상시험(Systolic Blood Pressure Intervention Trial, SPRINT)’이다. SPRINT 연구에서는 고혈압 환자들의 수축기 혈압을 120㎜Hg 미만 목표로 치료한 결과, 140㎜Hg 미만 치료군과 비교해 심혈관질환 발생 및 사망률이 유의하게 감소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승환 교수는 “국내 고혈압 진단 기준은 약 20년간 변화가 없었다. 하지만 전세계적으로 고혈압 기준을 낮추고 있는 추세이기 때문에 우리나라도 고혈압 기준을 낮추려면 이를 뒷받침할 근거가 많이 필요하다”며 “고혈압 전단계가 관상동맥경화증과 유의한 상관관계가 있다는 것을 입증한 만큼, 향후 국내 고혈압의 진단 기준 재설정 및 심·뇌혈관 질환 예방에 중요한 기여를 할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이번 연구결과는 미국 고혈압학회지(American Journal of Hypertension) 최신호에 실렸다.
서울아산병원 이승환 교수가 고혈압 전단계 환자를 진료하고 있는 모습. 서울아산병원 제공

민태원 의학전문기자 twm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