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액을 타인의 물건에 넣거나 소지품 표면에 묻히는 ‘체액 테러’가 최근 기승을 부리고 있다. 체액 테러는 성적 혐오감을 유발함에도 성범죄로 처벌하기 어렵다. 성적 의도를 지닌 행위라는 점에서 성범죄의 성격을 가지고 있지만, 신체에 직접적인 위해를 가하지 않아 강제추행으로 볼 수 없기 때문이다. 법조계에서는 이 같은 행위를 법적으로 명확히 규정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 13일 7개월 동안 지하철역에서 여성들의 가방이나 옷 주머니에 자신의 체액을 담은 피임기구를 몰래 넣은 남성이 재물손괴와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공중밀집장소에서의 추행) 혐의로 검찰에 송치됐다. 하지만 현 상황에서 이 남성이 성범죄로 처벌 받을 가능성은 높지 않다. 결과적으로 신체에 직접적인 위해를 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체액 테러는 사람이 아닌 소지품을 대상으로 이뤄져 현행법상 가해자를 재물손괴로 처벌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타인이 소지한 물건을 망가뜨려 효용을 해쳤을 뿐이라는 의미다.
현행법상 성범죄로 처벌 가능한 것은 체액을 상대에게 직접 뿌리는 경우다. 부산지법은 지난 1월 PC방 카운터 앞 간이침대에서 자고 있는 여성의 머리카락에 체액을 뿌린 A씨에게 징역 1년을 선고했다. 이처럼 성적 의도를 가지고 직접 신체에 피해를 주는 행위는 강제추행으로 볼 수 있지만, 일반적인 체액 테러의 경우에는 그렇지 않다.
전문가들은 체액 테러를 성범죄로 볼 여지는 충분하다고 보고 있다. 행위가 성적 의도를 띠고, 체액이 피해자의 신체에 닿을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새로운 유형의 성범죄로 분류 가능하다는 뜻이다. 승재현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체액이 간접적 방법으로 행사되는 것이 성범죄와 전혀 무관하다고 볼 수는 없다”며 “나도 모르게 체액을 만질 가능성이 다분하다면 간접적 방법에 의한 성범죄일 수 있다”고 말했다.
체액 테러가 성범죄가 되지 않으면 오히려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지적도 있다. 다중이용장소 침입도 성범죄로 처벌받는데, 체액 테러가 성범죄로 처벌이 안 되면 자연스럽지 못하다는 것이다. 승 연구위원은 “성적 욕망을 만족시킬 목적으로 화장실에 들어가는 것도 죄가 된다”며 “체액 테러는 행위를 했다는 점에서 비난 가능성이 더 높다”고 말했다. ‘체액 테러’가 최소한 다중이용장소 침입행위보다는 성범죄적 요소가 짙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다만 법조계는 체액 테러의 성격을 명확히 규정해 처벌해야 한다고 본다. 현행법 개정이나 입법 과정에서 범행 동기, 빈도 등을 면밀히 분석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창현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어떤 의도를 가지고, 어떤 사람을 상대로 하는 행위인지 범죄 유형을 분석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백혜련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은 지난달 체액 테러를 성범죄로 보는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하기도 했다.
박성영 기자 psy@kmib.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