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7일(현지시간) 세계 금융의 중심가인 미국 뉴욕 월스트리트 ‘돌진하는 황소상(Charging Bull)’ 앞에 태극기가 걸렸다. 태극기를 건 사람들은 재미 차세대협의회(Asian American Youth Council·AAYC) 회원들이었다. 다름 아닌 미국 소도시에서 해외 최초 한복의 날을 제정해 내고, 구글에 단체로 항의 메일을 보내 김치 원산지 검색 결과를 한국(Korea)으로 수정하는 결과를 얻어낸 그 단체다.
2017년 고등학생으로, 같은 학생들을 모아 단체를 결성한 브라이언 전(Brian Jon·19) 대표가 올해 9월 대학 신입생이 되니 말 그대로 MZ세대 한인들이다. 학생들의 힘으로 시작해, 어른들의 한인 단체와는 차별화된 활동을 펼쳐온 이들은 어떤 생각을 하며 무엇을 꿈꾸고 있을까. 지난 19일 미국에 있는 브라이언 전 대표와의 전화 인터뷰로 AAYC에 대한 얘기를 들어봤다.
-뉴욕 월스트리트 한복판 황소상 앞 태극기라는 이벤트 자체도 그렇지만, 기존 한인 사회와 연 없이 꾸려지는 재미 한국계 학생들만의 단체라는 게 아직 낯설면서도 신선하다. AAYC가 어떤 곳이며, 어떤 배경에서 태어났는지 알고 싶다.
“내가 뉴저지의 한 고등학교에서 학교 교사의 반복되는 인종차별 발언을 공론화하고 해당 교사의 해임까지 끌어낸 적이 있다. 그런데 자칫 (문제가 커지면) 한인들이 더 곤란해진다는 우려 때문이었는지, 당시 한인 사회는 이런 이슈를 공론화해서 문제를 해결하자는 분위기가 잘 이뤄지지 않았다. 그때를 계기로 미국 주류 사회 내에서 우리의 목소리를 더욱 키울 필요가 있다는 것을 체감했다. 그런 취지로 단체를 만들겠다며 학생들을 모집한다는 공고를 내니 일면식도 없는 50명의 한인 학생이 모였다. 인종차별을 공론화했다는 저(브라이언 전 대표)에 대한 인지도도 작용했겠지만, 한인 학생들이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AAYC의 인스타그램, 유튜브 등을 살펴보면 실제 영향력을 갖춰가는 것으로 보인다. 뉴저지주 정치인들과 활발한 교류가 눈에 띄던데, 어떻게 이뤄진 것인가.
“무작정 한국을 알리겠다며 미국 정치인들을 찾아가 설득했다기보다는 우리가 가진 영향력을 활용했다는 게 맞을 거다. 기존 한인 사회와의 교류나 후원 없이 학생들만이 모인 AAYC가 다양한 활동으로 뉴욕 주류 사회에서 눈에 띄자, 미국 정치인들이 선거 때 우리에게 지지 선언을 요청하기 시작했다. 그들이 우리를 필요로 하게 된 것이다. 올해의 경우 11월 선거를 앞두고 많은 정치인으로부터 지지 선언 요청이 쇄도해 주지사와 주 상원의원 선거만 돕겠다고 알렸다. 미국 정치인들이 우리 단체의 영향력을 선거 운동에 활용하면, 우리는 한국을 알리거나 잘못된 사실을 바로잡을 수 있는 행사나 활동에 미국 정치인이 협조할 것을 요청한다. 그렇게 영향력이 키워진다고 생각한다. 이번에 광복절 태극기 게양 행사를 진행할 수 있었던 것도, 한복의 날 제정을 끌어낸 것도 우리의 영향력이 미국 정치인에게 통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광복절 태극기 게양 행사는 정말 신선했다. 우선 광복절을 기념하겠다고 선택한 계기가 있나.
“AAYC 회원들과 한국을 방문해 정세현 민주평통 수석부의장과 김미경 서울시 은평구청장 등과 면담을 하며 한국의 외교적 문제에 관해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일정 중에 은평구에 있는 진관사를 방문해 초월 스님이 독립운동 당시 사용한 등록문화재 제458호 ‘진관사 태극기’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그때 독립운동 정신을 되새겨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 방법으로 미국에서 광복절을 기념해 태극기를 내거는 것을 떠올렸고, 회원들이 이에 공감해 추진하게 됐다.”
-뉴욕에 주목할 만한 명소가 많은데, 그중에서도 월스트리트 황소상 앞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인가.
“‘돌진하는 황소상’ 일대가 유명한 관광지이기도 하고, 월스트리트가 세계 경제의 중심지라 많은 관심이 쏠린다는 것도 고려한 건 사실이다. 하지만 그 이유 때문만은 아니었다. 황소상이 위치한 뉴욕 맨해튼의 볼링 그린파크는 미국이 1783년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뒤 뉴욕에서 마지막 영국 국기를 내리고 별이 13개 그려진 최초의 미국 국기를 게양한 곳이다. 독립을 기념할 수 있는 상징적인 장소인 셈이다. 그래서 그곳에 한국 독립을 기념하는 광복절에 태극기를 내걸고 싶었다.”
-단체 이름과 관련해 궁금한 게 있다. 주로 ‘한인 청년 단체’라고 소개되는데 영문 단체명은 ‘Asian American’이다. Korean이 아닌 Asian을 쓴 이유가 있나.
“처음 단체를 만들 때부터 미국 주류 사회 내 한인의 영향력을 높여야겠다는 생각이었기 때문에 원래 이름은 ‘Korean American Youth Council’이었다. 그러나 창립 초기만 해도 미국 내 정치인들은 한국인이 활동하는 단체에 별다른 관심이 없었다. 그래서 먼저 영향력을 높이자는 생각에 이름을 ‘Asian American Youth Council’로 변경했다. 이름을 바꿔 아시안 단체라는 점을 내세우고 오롯이 학생들만 활동하는 단체인 것이 알려지니 미국 정치인들이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현재 한인 2세를 비롯해 아시아 각국의 혼혈 학생들도 함께하고 있다. ‘Korean American’이라는 이름으로는 영향력이 없었던 과거와는 달라진 점을 느낀다. 미국 내에서 K이슈나, K문화에 관한 관심이 올라가기도 했고 우리 단체의 영향력도 확대된 걸 느낀다.”
-학생들로만 이뤄진 단체가 주목할 만한 영향력을 가진다는 게 흔한 일은 아니다. AAYC 활동을 이끌어오면서 힘들었던 점이 있다면 무엇인가.
“자비로 활동하고 있어 금전적 문제가 사실 가장 크다. AAYC는 비영리 단체이고 후원금이 많지 않다. 예를 들어 한복의 날 행사에서도 궁중 혼례복부터 호위 무사 전통 복장까지 한국의 문화를 최대한 재현하려 하는데, 다양한 형태의 전통 한복이 많이 필요하다. 미국 현지에서는 이를 구하기가 쉽지 않아 어려움이 큰 편이다.”
-고등학교에 AAYC를 결성했는데, 어느새 대학 진학을 앞두고 있다고 들었다. 앞으로 어떤 식으로 AAYC 활동을 이어나갈 계획인가.
“9월에 대학 신입생이 된다. 여러 대학에 합격했으나 펜실베이니아주에 있는 대학에 진학하게 됐다. 뉴욕 뉴저지 중심으로 활동을 시작한 AAYC와의 접근성을 고려해서 결정한 것이다. 나뿐 아니라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여러 대학으로 진학한 다른 AAYC 시니어 멤버들도 각자의 대학에서 AAYC 활동을 확장하고 있다.”
-AAYC의 앞으로 활동 목표는 무엇인가.
“AAYC가 더욱 활약해 앞으로 한인 3, 4세들이 미국 주류 사회에서 더욱 자유롭게 목소리를 낼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나가고 싶다. 우선 뉴저지 포트리시에 한복의 날을 제정하는 것을 추진할 계획이다. 오는 10월 21일 한복의 날 행사 때는 마크 지나 테너플라이 시장 부부의 전통혼례식과 필 머피 뉴저지 주지사 부부의 궁중 복식 패션쇼를 추진해보려 한다. 앞으로 활동 범위를 좀 더 다양하게 넓히고 싶다.”
천현정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