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세태 풍자’와 ‘유머’, 두 마리 토끼를 잡으며 화제를 모아온 경기 의정부고등학교 졸업사진이 올해도 공개됐다.
워낙 관심도가 높아 이전엔 촬영 현장을 인터넷으로 라이브 방송하는 듯 떠들썩했지만, 올해는 코로나19 때문에 별도의 일정 공개 없이 조용히 교내에서 18일 촬영됐다. 의정부고등학교 학생자치회 SNS에 19일 올라온 사진들은 여전히 톡톡 튀는 아이디어로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방역복을 입고 진단 검사를 하는 코로나19 의료진, 암호화폐 투자 광풍 시대 우상향을 표시하는 일론 머스크와 도지코인 강아지 등 올해도 세태를 반영하는 분장들이 눈길을 끌었다.
또 인기 애니메이션 ‘귀멸의 칼날’과 유튜브 콘텐츠 ‘머니게임’ 등장인물들, 드라마 ‘펜트하우스’의 천서진 등 올해 크게 화제가 된 다양한 캐릭터 분장도 웃음을 자아냈다.
최근 막 내린 2020 도쿄올림픽에서 감동을 준 금메달리스트 김제덕 선수의 환호하는 모습은 물론 덕아웃에서 껌을 씹는 심드렁한 모습으로 ‘태도 논란’에 휘말렸던 강백호 선수의 표정을 따라 한 학생도 있었다.
예년에 비해 조용한 공개였지만 누리꾼들은 “점점 더 발전한다, 너무 웃기다”, “코로나로 추억을 쌓기 어려운 때에 좋은 추억이 되길 바란다”는 등의 반응을 보였다.
의정부고의 졸업사진이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2009년부터다. 지금은 전국의 많은 고등학교가 의정부고처럼 다양한 분장과 콘셉트로 졸업사진을 찍지만, 당시에는 의정부고 외에 찾기 어려울 정도로 독보적이었다.
특히 사진들이 인터넷상에서 이슈가 되면서 차차 학교의 전통으로 자리 잡았다. 상당수 의정부고 학생들은 고3 초기부터 졸업사진 콘셉트를 고민한다고 한다.
대통령, 정치인 분장을 통해 보여주는 촌철살인의 시사 풍자도 많아 유명세에 한몫했다. 하지만 날 선 풍자는 현재는 찾아보기 힘들다. 정치 풍자 사진이 공개되자 일부 보수단체가 명예훼손으로 문제를 제기해 학교 측이 한동안 홍역을 치르기도 했기 때문이다.
이에 학교 측이 외부에서 문제를 제기할 법한 콘셉트는 미리 ‘사전 검열’을 하면서 일부 학생들과 갈등을 빚기도 했다.
지금은 학생회와 교직원들이 모여 ‘콘셉트 회의’를 하는 등 사전 대화와 유기적인 소통을 통해 불상사는 피하는 선에서 유쾌한 학교 전통을 살려 가고 있다.
원태경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