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호분의 아이들 세상] 실수가 두려운 아이

입력 2021-08-20 17:21

어떤 사람의 마음을 이해하기 위해선 그 사람의 부모뿐만 아니라 조부모까지 3세대를 파악해야 한다. 조부모가 살았던 시대적, 문화적 배경과 그들의 양육방식이 부모에 영향을 주고, 부모는 그 영향으로 자녀를 대하는 방식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또 세대 간에는 양육 행동이 모방되기도 하지만, 반작용으로 형성되기도 한다.

다섯 살짜리 남자아이인 J는 유치원 생활이 너무나 모범적이어서 단 한 번도 지적받는 행동을 하지 않을 정도이다. 교사를 도와주고 의젓하게 행동해 교사들은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했다. 부모도 J 머리가 비상하게 좋고 뭐든 가르치면 쉽게 받아들이고 이해가 빠르니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런데 어느날 새로 부임한 유치원 교사는 J가 지나치게 눈치를 보는 것 같다며 걱정을 해서 병원을 찾았다.

상담을 해보니 J는 아주 똑똑한 아이였지만 역시 그랬다. J는 함께 놀면서 매우 긴장하고 있었고 장난감을 가지고 놀려고 하지 않았다. 그보다는 대화를 나누는 것이 좋다고 하였다. J는 함께 놀기를 유도하자 퍼즐이나 자기가 잘할 수 있는 지적인 게임만 하려고 했고, 퍼즐은 완성하거나 게임을 잘했을 때 당연히 인정과 찬사가 주어질 것을 기대하는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늘 우수하고 똑똑하다고 인정받아온 J는 뭔가를 잘해야만 ‘사랑’ 받을 수 있다고 느끼는 듯했다. 그래서 자신이 실수하거나 잘하지 못할까 봐 노심초사하고 눈치를 보며 자신이 해보지 않았던 장난감에는 손도 대려하지 않았다. 또 감정이 드러나는 장난감은 피하고 자신의 ‘능력’을 보여 줄 수 있는 장난감만 택하는 등 방어적인 놀이만을 선택하였다. J 같은 경우 그대로 방치하면 불안해하고 오히려 자신감을 잃을 수 있다.

부모는 모두 아주 엄격한 부모님 밑에서 성장하였다. 열심히 노력해서 좋은 성적을 받고 상을 받아와도 무뚜뚝한 부모님은 절대로 칭찬하는 법이 없었다. 그런 부모님이 원망스러워 자신들은 자신의 부모님처럼 아이를 키우지 않으리라 마음먹었다. 아이에게 칭찬을 아끼지 않으리라 마음먹었다. 그래서 아이가 뭔가를 성취했을 때 듬뿍 칭찬을 해주었고, 아이는 칭찬 받으려고 바르게 행동하여 잘 자라고 있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것도 지나치면 독이 되기 마련. 칭찬도 그렇다. 뭔가를 잘해서 성취하거나, 결과에 대해서 칭찬이 지나쳤을 때 특히 더 그렇다. 결과보다는 ‘뭔가를 열심히 하는 태도’나 ‘과정’ ‘규칙을 잘 지켰을 때’에 칭찬해 주어야 한다.

그리고 J처럼 실수할까 봐, 잘하지 못할까 봐 두려워하는 아이에게 엄마 아빠도 완벽하지 않고 실수도 한다는 걸 보여주는 것, 아이 앞에서 그날 있었던 ‘실수담’도 이야기하며 함께 웃는 시간을 갖는 것이 좋다.

‘완벽함’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자신이건 다른 사람이건 ‘실수’ ‘부족함’이 있다는 걸 알고 이에 너그러워질 수 있는 걸 배우는 것이 J에게는 더 실용적인 가르침 일 수 있다. 또 자신이 완벽하고, 잘 해야 사랑받을 수 있다는 조건부 사랑이 아닌, 부족함이 있어도 ‘무조건적인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존재임을 깨닫게 해주어야 한다.

게임이나 놀이를 하는 것은 재미있게 놀기 위해 하는 것이지, 이기기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말해 주고, 평소에 부모가 승부에 집착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도록 한다. 또 친구와 게임에서 이겼을 때도 상대방의 마음을 헤아려보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약자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는 습관을 가지도록 도와주자.

자신감이란 전혀 실패하지 않는 데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실패하고 다시 도전해서 성공한 경험에서 우러나는 것이다. 그런 경험이 아이를 성장시킨다. 아이들에게 즐겁게 지는 법을 알게 해서 단단한 마음의 면역성을 길러주자.

이호분(연세누리 정신과 원장, 소아청소년 정신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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