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명인간 취급” 해군 여중사 추행 신고 뒤 ‘2차 가해’ 당해

입력 2021-08-20 14:22

성추행 피해 신고 뒤 사망한 해군 여군 부사관이 성추행 가해자로부터 2차 가해를 당했다는 의혹이 사실로 확인됐다.

국방부는 20일 국회 국방위에 제출한 현안보고 자료에서 해군 모 부대 소속 A상사가 피해자 B중사를 성추행한 뒤 주임상사로부터 ‘행동 주의’ 조언을 받았으며, 이후 “피해자를 무시(투명인간 취급)하는 행위를 지속했다”고 밝혔다.

성폭력 가해자가 피해자를 계속 괴롭혀 온 정황을 군 당국이 공식 확인한 것이다. 해군은 그간 해당 사건이 수사 중이라는 점을 들어 2차 가해 의혹에 말을 아껴왔다.

보고 자료를 보면 A상사는 5월 27일 민간식당에서 피해자와 식사를 하던 중 손금을 봐준다며 손을 만지는 등 성추행했고, 복귀 과정에서 재차 팔로 목 부위를 감싸는 일명 ‘헤드록’으로 성추행했다.

B중사는 부대 복귀 뒤 메신저를 통해 주임상사에게 피해 사실을 보고했다. 하지만 주임상사는 ‘피해자가 성추행 사실의 외부 노출을 요청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사건을 상부에 보고하지 않았다.

더군다나 피해자와 가해자에 대한 물리적 분리 조치도 없이 A상사에게 ‘행동 주의’만 줬다. 이 일로 보고 사실을 알게 된 A상사는 B상사를 업무에서 배제하는 등 무시하는 행위를 일삼은 것으로 파악됐다.

2차 가해는 피해자가 감시대장(대위)과 기지장(중령) 등 면담을 통해 피해 사실을 털어놓은 이달 6일까지 2개월 넘게 지속됐다. 분리 조치는 9일 정식신고 접수와 함께 피해자가 다른 부대로 전속되면서 비로소 이뤄졌다. 사건 발생 74일 만이다.

이 과정에서 기지장이 피해자가 부대를 떠난 뒤 소속 부대 간부들을 소집해 피해 사실을 추정할 수 있는 부적절한 발언으로 교육을 실시하는 등 추가 2차 가해 정황도 드러났다.

B중사는 성추행 피해 신고 사흘 만인 12일 숙소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이후 해군은 B상사를 순직 처리했고, 가해자 A상사를 군인 등 강제추행 혐의로 구속했다. 또 주임상사와 기지장 등 2명을 ‘신고자에 대한 비밀보장을 위반한 혐의’로 입건해 수사하고 있다.

서욱 국방부 장관은 이날 국방위 전체회의에 출석해 “우리 군은 최근 성폭력 사건과 관련해 상황을 엄중하게 인식한 가운데 투명하고 공정한 수사를 통해 명명백백하게 진상을 규명해가고 있다”고 말했다.

서 장관은 특히 지난 5월 공군에서 성추행 피해를 입은 여군이 극단적 선택을 한 데 이어 해군에서도 유사한 사건이 발생한 데 대해 “2차 가해를 포함한 전 분야를 낱낱이 수사해 엄정히 처리하겠다”며 “성폭력 예방과 군내 성폭력 사건처리 매뉴얼, 그리고 피해자 보호 시스템을 조속히 개선해가겠다”고 밝혔다.

최민우 기자 cmwoo1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