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사기밀 누설 혐의’ 이태종 전 법원장, 2심도 무죄

입력 2021-08-19 17:16
지난해 9월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이태종 전 서울서부지법원장의 모습, 이 전 법원장은 19일 2심에서도 무죄를 선고받았다. 연합뉴스

검찰의 법원 수사 확대를 막으려 수사기밀을 빼돌렸다는 혐의로 기소됐던 이태종 전 서울서부지법원장(현 수원고법 부장판사)이 1심에 이어 항소심에서도 무죄를 선고받았다. 항소심은 1심의 일부 법리 오해를 지적하면서도 공무상비밀누설과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혐의가 무죄라는 결론은 변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서울고법 형사13부(부장판사 최수환)는 19일 직권남용 등의 혐의로 기소된 이 전 법원장에게 1심과 같이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원심 판결에는 위법수집증거 및 공모공동정범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고, 피고인의 공모 여부에 관한 사실을 오인한 잘못이 있다”면서도 “공무상비밀누설의 점 및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의 점을 무죄로 판단한 원심의 결론은 정당하다”고 했다.

이 전 법원장은 서울서부지법원장이던 2016년 검찰이 서울서부지법 소속 집행관사무소 사무원 비리 수사를 위해 압수수색 영장을 청구하자 기획법관과 직원들에게 영장청구서 사본 등 수사 내용을 확보토록 하고, 이를 법원행정처에 보고하게 한 혐의로 기소됐었다. 검찰은 “헌법상 영장주의 취지를 오염시켰다”며 범죄의 중대성을 주장했지만 1심 결론은 무죄였다. 이 전 법원장이 기획법관의 행정처 보고 사실을 일부 인지했더라도, ‘용인을 넘어선 지시’로 공모했다고까지는 판단하기 어렵다는 것이었다.

항소심 재판부는 1심과 달리 “공모한 사실을 인정할 수 있다”는 판단을 내놨다. 이 전 법원장이 2016년 9월쯤 기획법관으로부터 “집행관사무원 비리 사건과 관련해 행정처 보고가 필요하다”는 취지의 보고를 받고 명시적, 묵시적으로 승인했다는 판단이었다. 재판부는 이 전 법원장이 기획법관의 수사정보 취득 및 행정처 보고서 송부 사실을 충분히 알고 있었음에도 이를 제지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다만 이러한 보고서 송부 행위가 공무상비밀누설죄가 말하는 ‘누설’에 해당하진 않는다고 재판부는 결론지었다. 재판부는 기획법관이 보고서 작성을 위해 모은 수사정보들을 “사법행정사무의 목적 달성에 필요한 최소한의 범위를 다소 벗어난 것”이라고 보면서도, “직무와 무관하게 취득된 것이라고 볼 수는 없다”고 했다. 당시 이 전 법원장과 기획법관이 검찰 수사와 관련한 보고서를 작성해 임종헌 전 행정처 차장에게 보낸 것은 “직무상 비밀을 취득할 지위 혹은 자격이 있는 법원행정처 차장에게 전달한 행위”로 판단됐다.

이 전 법원장이 법원 사무국장 등에게 영장 사본을 신속하게 확보토록 지시했다는 등의 직권남용 혐의도 무죄로 판단됐다. 재판부는 “영장이 청구될 경우 이를 보고하고, 필요한 영장이 있으면 사본을 만들어 총무과에 제공하라”는 취지의 지시가 있었다고 인정하긴 어렵다고 판단했다. 또 설령 그러한 지시가 있었다 하더라도 직권남용이라 단정하기 어렵다는 게 재판부의 판단이었다.

일어서서 선고를 들은 이 전 법원장은 법정을 나서며 취재진에게 별다른 말을 남기지 않았다. 그는 지난달 결심공판 최후진술에서 검찰을 향해 “사과 없이 기계적으로 항소한 데에 분노마저 느낀다” “법원장 정도를 기소해야 자신들이 돋보인다고 생각한 것”이라고 했었다. 검찰의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사건 수사 결과 재판에 넘겨진 전현직 법관들은 다수가 무죄 판단을 받고 있다.

이경원 기자 neosar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