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윳값 미스터리’…현장선 버리는데 업계는 인상 예고

입력 2021-08-19 16:26 수정 2021-08-19 17:04
서울 시내 한 대형마트에 우유가 진열돼 있다. 낙농진흥회는 원유 가격을 2.1% 인상하기로 결정했다. 원유 가격 인상에 따라 우윳값도 오를 것으로 전망된다. 연합뉴스

식품 가격 인상이 줄 잇는 가운데 우윳값 인상도 예고됐다. 낙농진흥회가 원유(原乳) 가격을 올리면서다. 우윳값이 오르면 우유를 재료로 쓰는 유제품, 커피, 과자, 빵 등도 연쇄적으로 가격이 오를 것으로 전망된다.

19일 낙농진흥회 등에 따르면 이달부터 원유 ℓ당 가격이 926원에서 21원(2.3%) 오른 947원이 적용된다. 2018년 이후 3년 만이다. 흰우유 판매 적자에 시달리는 유업계는 가격 인하를 요구하고, 물가 상승을 억제하려는 정부는 ‘연말까지 가격 인상 유예’를 중재안으로 내놓았으나 낙농업계가 끝내 받아들이지 않았다. 낙농업계는 사료 등 원자잿값이 오른 만큼 원유 가격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유업계는 낙농진흥회로부터 지난 1일 이후 이미 공급받은 원유에 대해 인상된 가격으로 대금을 내야 한다. 당장 흰우유 소비자 가격을 올릴 것이라고 발표하지는 않았지만 우윳값 상승은 다음 수순으로 받아들여 지고 있다. 원유 가격은 2.3% 올랐으나 누적된 물류비, 인건비 상승을 고려하면 우윳값 인상 폭은 10% 안팎에서 정해질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유업계에 따르면 출산율 감소 등으로 우유 소비가 줄면서 매년 생산되는 우유의 15% 안팎이 남아돈다. 일부는 버려지고 일부는 정상가보다 30% 이상 할인 판매된다. 소비자들은 “출산율이 떨어지면서 우유가 남아 버려진다는데, 가격을 올린다니 이해가 안 간다”는 반응이다. 덜 생산하고 싸게 팔면 되지 않느냐는 지적이다.

하지만 유업계가 공급을 줄여 가격을 낮추는 방식은 지금으로썬 불가능하다. 낙농진흥법에 따라 유업체는 계약된 농가에서 생산한 원유 할당량을 모두 사야 하기 때문이다. 낙농가는 안정적인 생산이 가능해졌으나 유업계는 수년째 적자를 감수해야 하는 상황이다.

가격 또한 수요와 공급에 맞춰 정할 수 없다. 낙농업체에서 발생하는 생산비 증가 요인만 원유 가격에 반영하도록 돼 있다. 2013년 ‘원유가격 생산비 연동제’가 도입되면서 이런 가격 결정 구조가 만들어졌다. 원유가격 연동제는 2011년 구제역으로 원유 생산량이 급감하면서 우유 파동이 일어나자 안정적인 수급을 위해 만들어진 제도다.

정부는 원유가격 연동제를 개편하려고 하고 있다. 우유 소비가 줄어드는데 생산비용을 따져 가격을 올리는 지금의 가격 결정 체계는 불합리하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되면서다. 하지만 낙농가가 젖소 사육을 포기하는 식으로 반발하는 경우 다시 수급 불균형이 일어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유업계에서는 제도 개편이 절실하다는 입장이다. 흰우유가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가장 크지만 대부분 이익을 내지 못한다. 서울우유, 매일유업, 남양유업 등 주요 유업체 적자 규모가 연간 800억원 안팎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우윳값이 오르면 우유를 원재료로 만들어지는 요거트나 치즈 같은 유제품, 카페라떼와 같은 커피류, 과자와 빵 등의 가격도 잇따라 오를 수 있다. 결국 소비자가 함께 물가 상승을 짊어져야 하는 셈이다.

유업계 한 관계자는 “우윳값이 올라도 정가로 판매하지는 못할 것이라는 자조가 나온다”며 “팔리지 않을 원유를 의무적으로 사야 하는데 가격도 함부로 올릴 수 없는 상황이 수년째 이어지고 있어서 업계가 전반적으로 힘든 상황”이라고 말했다.

문수정 기자 thursda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