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에 잠입한 북한 공작원과 만나고 수차례 통신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민간단체 연구위원이 첫 재판에서 “짜맞추기 수사”라고 주장하며 무죄를 주장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18단독 양은상 부장판사는 18일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 기소된 이정훈 ‘4·27시대연구원’ 연구위원에 대한 첫 공판 기일을 열었다. 이 연구위원은 국내에 잠입한 북한 공작원과 서울 종로 등에서 여러 차례 회합하고, 북한의 대남공작기구와 지령 및 보고를 주고받은 혐의를 받고 있다.
검찰은 “피고인이 2017년 4월 서울의 한 호텔에서 ‘고니시’라는 공작원과 만나 1시간여 대화를 나눴다”고 주장했다. 이 연구위원과 공작원은 스터디카페나 식당에서 북한의 지령 수·발신용 암호화 프로그램을 여러 차례 점검하기도 했다. 검찰이 밝힌 공소사실에는 “이 연구위원이 북한 공작원에게 ‘북한이 대남선전매체를 활용해 쟁점을 정리하고 지침을 하달해야 개별 세력들이 분열되지 않는다’고 제안했다”는 내용도 담겼다.
이 연구위원은 “공안당국의 짜맞추기 수사와 증거 조작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며 혐의를 부인했다. 그는 “국정원 등은 해당 공작원이 지난해 2월 사망했다고 하는데 실제로 사망한 건지 사라졌는지 확인 과정이 부실하다”며 공작원의 실존 여부에 의문을 드러냈다. 수사기관이 지목한 북한 공작원이 실존 인물인지 알기 어렵다는 주장은 최근 논란이 된 ‘청주 활동가 사건’에서도 제기된 바 있다. 이 연구위원은 “공안당국이 4년간 관련 수사를 진행했으나 해당 공작원이 사라졌고 뚜렷한 증거 없는 사건”이라며 “국가정보원은 수사를 폐기처분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앞서 이 연구위원은 2006년 이른바 일심회 사건으로 징역 3년을 선고받았다. 일심회 사건은 이 연구위원 등 당시 민주노동당 인사 5명이 북한 공작원에게 남한 내부 동향을 보고했던 사건이다. 검찰은 그가 일심회 사건의 조직원들과 2017년 통일사업 관련 조직을 결성해 공작원과의 만남 등을 이어갔다고 보고 있다.
재판부는 다음 달 두 차례 더 공판준비기일을 열고 증거에 대한 양측의 의견을 정리할 계획이다.
임주언 기자 e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