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레반은 17일(현지시간) “‘아프가니스탄 이슬람 에미리트’(Islamic Emirate of Afghanistan) 첫날을 기념한다”며 전 지역에 사면령을 발표했다. 같은 날 파키스탄탈레반(TTP)은 “아프간 탈레반의 리더십과 아프간 사람들을 축하한다”는 성명을 내놨다.
TTP 대변인 모하마드 코라사니는 성명에서 “아프간 탈레반 지도부에 대한 충성을 재확인하고 아프간 이슬람 에미리트 지원을 강화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TTP는 지난달 발생한 중국 노동자 버스 테러 사건 주범으로 지목된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단체다.
TTP는 지난 16일 대변인 명의 성명을 발표하며 TTP 2인자인 마울비 파키르 모하메드 석방 사실도 확인했다. 파키르 모하메드는 2013년 아프간에서 체포돼 바그람 미군기지 교도소에 구금돼 있었다. 탈레반은 바그람 지역을 장악한 뒤 수감자 수천 명을 풀어줬는데, 여기에 그도 포함된 것이다.
파키르 모하메드는 국제 테러 단체 알카에다의 지도자 아이만 알자와히리와 친분이 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과거 알자와히리가 모하메드의 집을 자주 방문했던 사실이 보도되기도 했다.
알자와히리는 하이바툴라 아훈자다가 탈레반 최고 지도자로 오르자 그에게 충성을 서약했던 인물이다. 탈레반의 아프간 정복이 알카에다 재건을 앞당기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되는 이유다.
탈레반 축하하는 테러 단체
테러리스트 분석 단체 ‘SITE 인텔리전스 그룹’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최근 탈레반의 아프간 점령을 축하하는 테러단체 성명이 잇달아 나오고 있다.
SITE는 이날 이라크와 이란에서 활동하는 알카에다 연계조직 쿠르드족 단체가 “아프간 탈레반을 축하하며, 전 세계 전사들을 위한 인도의 빛이 되기를 기도한다”는 성명을 발표했다고 밝혔다.
동아프리카와 예멘에 기반을 둔 테러단체 알샤바브 역시 “아프간에서 미국의 패배는 소말리아에서 터키가 기다리는 운명”이라는 성명을 내놨다. 터키는 소말리아 정부군을 지원하고 있다.
무장 정파 하마스와 이슬라믹지하드(PIJ), 가자지구 알카에다 연계 조직, 이슬람국가(IS) 등도 ‘아프간의 해방을 축하한다. 미국 점령의 실패’ ‘믿음의 힘을 증명하는 탈레반의 승리’ ‘탈레반의 승리는 역사적 교훈’ 등의 표현을 쓰며 탈레반 지도부를 환영했다.
SITE는 “지하디스트(이슬람 성전주의자)가 탈레반의 아프간 정복을 9·11과 유사한 분수령으로 묘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도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이 탈레반의 아프간 장악을 축하하는 글을 공유하고 있다”며 “알카에다 성향의 언론은 지난 16일 ‘탈레반의 형제들’이 승리한 것을 축하하는 서명되지 않은 메시지를 게재했다”고 보도했다.
아프간, 테러조직 온상 되나
국제사회는 탈레반의 강력한 부상이 테러 단체의 위협을 증가시킬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하고 있다.
벤 월러스 영국 국방장관은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알카에다가 다시 돌아올 것”이라며 “실패한 국가가 그런 자들의 온상이 되는 게 걱정된다”고 말했다.
조지 메이슨 대학 국가안보연구소 자밀 재퍼 이사는 “탈레반의 귀환은 알카에다나 그 연계조직, IS 같은 단체가 돌아갈 수 있는 공간이 열린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미 중앙정보국(CIA) 출신인 더글러스 런던도 “이란에 숨어있던 알카에다가 미군 철수를 기회 삼아 조직원들을 아프간에 다시 보내고 있다”고 말했다.
탈레반이 아프간에 구금된 테러범들을 전면 석방한 것도 불안 요인이다. 타임지는 “폭탄 테러범, 납치범 등 아프간에서 가장 위험한 테러 포로 수천 명이 풀려났다”고 분석했다.
미 정보당국은 알카에다의 위협 가능성 재평가에 들어갔다. 애초 정보당국은 미 철군 후 알카에다 핵심 그룹이 복원되는 데 18~24개월가량 걸릴 것으로 예상했지만, 그 시기가 앞당겨질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정치전문매체 더힐은 “미국 본토를 위협할 수 있는 테러리스트 그룹이 새로 번성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졌다. 미 당국이 알카에다 위협에 대한 추정치를 재평가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존 볼턴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트위터에 “탈레반이 알카에다와 IS, 그리고 이름도 못 들어본 다른 테러 단체들이 아프간에서 피난처를 찾을 수 있도록 허용할 것”이라며 “이런 일이 생기도록 놔두는 걸 참을 수 없다”고 비판했다.
바이든, 영국 총리와 첫 통화
조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영국 보리스 존슨 총리와 통화하고 아프간 안보 상황에 대해 논의했다.
백악관은 “세계 공동체가 안전에 위협을 받고 있는 난민과 아프간 사람들을 위한 인도적 지원 제공 방법, 동맹국과 민주주의 파트너의 긴밀한 협력 필요성 등을 논의했다”고 설명했다.
백악관은 또 “미국과 영국 정상이 다음 주 화상으로 G7 정상회의를 열어 공동 전략과 접근 방식을 논의하기로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아프간 함락 후 바이든 대통령이 외국 정상과 직접 대화를 나눈 건 처음이다.
워싱턴=전웅빈 특파원 imu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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