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같은 하루가 반복되는 외로운 절망…둘이 되면 달라질까

입력 2021-08-17 17:55
영화 '팜 스프링스' 스틸. 그린나래미디어 제공

타임 루프 설정은 종종 철학적 질문을 던지는데 유용한 도구가 된다. 영화 ‘어바웃 타임’에선 이런 질문을 던진다. 과거로 돌아가서 내가 했던 선택을 바꿀 수 있다면 더 행복해질 수 있느냐고. 과거를 돌아가서 후회를 고치는 선택을 하는 주인공을 따라가다 보면 ‘후회를 버리고 현재를 열심히 살자’라는 결론에 다다른다.

영화 ‘팜 스프링스’는 선택을 배제하는 방식으로 ‘어바웃 타임’과는 정반대의 설정을 제시한다. 타임 루프로 모든 것이 똑같이 반복되는 타의에 의한 삶에도 살만한 가치가 있는지 묻는다. 주인공 ‘나일스’(앤디 샘버그)는 11월 9일에 갇혀 있다. 잠이 들어도 목숨을 잃어도 눈을 떠보면 11월 9일이다. 언제부터 여기 있었는지 기억을 잃을 정도로 오랫동안 11월 9일에 갇혀 있었다.

나일스에게 이날은 그다지 특별한 날이 아니다. 신부 들러리가 된 여자친구의 결혼식에 함께 참석하기 위해 미국 캘리포니아 사막 한가운데의 휴양지 ’팜 스프링스’로 왔을 뿐이다. 심지어 반복되는 하루를 경험하면서 여자친구의 불륜을 알게 된 지도 꽤 오래됐다. 그에겐 말 그대로 “어제가 오늘이고, 내일도 오늘”이다. 결혼식에 온 여자와 심지어 남자들을 유혹해보고, 술독에도 빠져 살아보고, 마약도 해보고, 자살도 해본 그에겐 이미 삶의 의지가 없다. 죽지 못해 살아가는 모습이다.

영화 '팜 스프링스' 스틸. 그린나래미디어 제공

그의 타임 루프에 우연히 세라(크리스틴 밀리오티)가 뛰어든다. 세라는 여동생의 결혼식에 참석하러 왔지만 삶을 이어갈 의지가 없을 만큼 불행하다. 주변 사람들이나 가족들이 자신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느낄 만큼 자존감도 낮다.

세라는 반복되는 세상에 안정감을 느끼면서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선택들을 나일스와 하게 된다. 그리고 나일스도 수만 번 반복했던 그의 11월 9일이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한다. 나일스가 그토록 지루하게 느꼈던 11월 9일에도 세라와 함께하면서 새롭게 발견하는 것들이 생긴다. 나일스는 극 중 “시도하든 하지 않든 끝은 늘 같지만 저 아가씨는 늘 현재에 있죠”라고 말한다.

세라와 나일스의 특수한 상황을 바라보다 보면 타의에 의한 삶에 무기력에 빠질 수 있는 우리의 삶이 떠오른다. 세라와 나일스는 그걸 벗어나기 위해 더 극단적인 행동도 서슴지 않을 뿐이다. 자포자기하고 좌절하는 모습과 분노하는 모습에는 고개가 끄덕여진다.

영화 '팜 스프링스' 포스터. 그린나래미디어 제공

각본을 맡은 앤디 시아라는 “타임 루프를 선택한 이유는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과 방식이 모두 정해져 있는 인물이 또 다른 인물을 만나면서 인생의 의미가 무엇인지 생각하고 계속해서 새로운 하루를 시작하려고 하는 데 있다”며 “다른 타임 루프 영화들이 타임 루프에 빠진 상황들에 관심을 갖는다면 우리는 다른 방향으로 달려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팜 스프링스’는 지난해 선댄스영화제에서 프리미어 상영 이후 폭발적인 반응으로 미국 온라인 스트리밍 서비스(OTT) 업체 훌루(Hulu)와 배급사 네온에 2250만 달러(약 260억원)을 받고 선댄스영화제 사상 최고 판매가를 기록한 바 있다. 로튼 토마토 신선도 95%, 팝콘 지수 88%로 작품성과 대중성을 모두 인정받았다. 제78회 골든 글로브 시상식 뮤지컬/코미디 부문 최우수작품상과 남우주연상 2개 부문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19일 개봉.

김용현 기자 fac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