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부가 언론에 검찰의 수사 상황이 보도될 경우 검사·수사관에 대한 내사에 착수할 수 있도록 하는 내부 규정을 마련했다. 법무부는 지난달 한명숙 전 국무총리 모해위증교사 의혹 사건 감찰 결과 발표 당시 마련한 초안을 관계 기관으로부터 의견을 수렴한 뒤 최종 확정했다고 밝혔다. 개정안에는 그간 문제로 지적되어 온 피의사실 공표 문제를 개선하겠다는 취지가 담겼지만 자칫 검찰의 ‘깜깜이 수사’를 낳고 나아가 수사 자체를 위축시킬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법무부는 “공보관이 아닌 검사나 수사관이 수사 정보를 의도적으로 유출한 것으로 의심할 타당한 이유가 있을 경우 각급 검찰청 인권보호관이 진상조사에 착수할 수 있다”는 내용을 담은 ‘형사사건 공개금지 등에 관한 규정’을 개정해 시행한다고 17일 밝혔다. 진상조사 결과 공무상 비밀누설이나 피의사실 공표 등 범죄 혐의 확인이 필요한 경우 인권보호관은 내사에 착수할 수 있다. 비위가 발견된 경우 인권보호관은 기관장에게 즉시 보고하고 기관장은 감찰 등 필요한 조치를 해야 한다.
공소 제기 전 피의사실 공표의 예외적 허용 요건도 엄격히 제한된다. 개정안에 따르면 피의자가 죄를 범했다고 믿을 만한 ‘객관적 정황’이 있어야만 수사 정보 공개가 가능하다. 법무부는 다만 이 기준이 모호하다는 지적을 반영해 공개 범위를 ‘객관적으로 충분한 증거나 자료를 바탕으로 한 정보’로 한정했다고 설명했다. 다만 N번방 사건과 같은 디지털 성범죄, 전기통신금융사기, 감염병예방법 위반 범죄, 테러 범죄는 ‘피해가 급속히 퍼지거나 동종범죄 발생 우려가 크다’고 보고 피의사실 공표의 예외 범죄로 지정했다.
법무부는 이 밖에 국민의 알 권리 보장을 위해 기소 전이더라도 형사사건 공개심의위원회 의결을 전제로 공개 범위를 확대했다고 밝혔다. 공개범위는 수사 의뢰, 고소·고발, 압수수색, 출국금지, 소환조사, 체포·구속 등 단계별로 세분화했다. 대상이 되는 범죄는 중요 사건으로 법무부 소속 공무원이나 판사, 변호사, 국회의원, 지방의회의원, 4급 이상 공무원 범죄, 주한미군 범죄, 공안 사건,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 등으로 한정된다. 다만 공개된 피의사실에 대해 피의자 등이 30일 이내에 반론 요청을 하면 이 내용도 언론에 공개한다.
법무부는 지난달 14일 개정 규정을 예고한 바 있다. 법무부는 일선 검사와 언론 등 관계기관 의견을 수렴해왔다. 일선에서는 검찰 수사가 위축될 수 있다는 우려 등을 표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의 한 관계자는 “사건 관계인, 변호인 등 수사 정보가 새어나가는 방법이 다양한데 기자랑 통화만 해도 잠재적 피의자가 되는 것이냐”고 반문했다. 이에 대해 법무부 관계자는 “의혹이 있으면 진상조사를 먼저 진행하고 범죄 존재 여부를 확인할 필요가 있는 경우로 (내사 여부를) 규정했다”고 강조했다.
구승은 기자 gugiz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