꽁무니 빼는 정부군… SNS 포착된 아프간 함락 순간들

입력 2021-08-17 17:09
아프건 정부군이 지난 14일(현지시간) 국경 다리를 건너 우즈베키스탄으로 도망치고 있는 모습. 트위터 캡처

이슬람 무장단체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 남서부 님로즈의 주도 자란즈에서 시작해 수도 카불까지 점령하는 데 걸린 시간은 불과 9일이었다. 인터넷에선 아프간 정부군이 국외로 도피하는 모습, 버려진 군 장비를 탈레반이 노획하는 장면과 도시에 무혈입성하는 영상 등이 퍼지고 있다.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16일(현지시간) 주민, 탈레반 대원, 현지 취재진 등이 SNS에 게재한 영상 중 자체 검증을 거친 장면을 일부 소개했다.

첫번째 영상에선 아프간 정부군이 인접국으로 도주하는 모습이 담겼다. 아프간과 우즈베키스탄 국경에 위치한 다리가 정부군의 수송 차량들로 꽉 막혀 있는 영상이다. 트럭 짐칸에 앉아 대기하는 군인들의 모습도 나온다. 또 다른 영상에선 다수의 정부군 차량이 동쪽 국경을 넘어 줄지어 이란으로 향하는 모습이 포착됐다.

NYT는 이를 토대로 “몇몇 도시에선 정부군이 탈레반의 진격을 저지하려고 격렬한 전투를 벌이기도 했지만 훨씬 더 많은 지역에서 장비를 버리고 후퇴했다”며 “지역마다 정부군 차량 행렬이 국경과 공항으로 달리는 모습이 포착됐다”고 지적했다.

탈레반 대원들이 아프간 정부군이 버린 헬기를 운용하는 모습. 트위터 캡처

NYT는 정부군이 버리고 간 각종 장비가 탈레반 손에 넘겨진 것으로 추정했다. 한 영상에선 탈레반이 점령한 아프간 북서부 헤라트 공군 기지에서 탈레반 대원들이 정부군 헬기를 탈취해 운용하는 장면이 찍혔다. 헬기에 탑승한 탈레반 대원들은 휴대전화를 꺼내 들고 촬영하기도 했다. 다만 NYT는 “탈레반이 직접 헬기를 조종했는지, 편을 바꾼 조종사에 의존하는 것인지 여부는 불분명하다”고 설명했다.

NYT는 자체적으로 영상을 분석한 결과 미군 철수 이후 탈레반 공세가 시작된 지난 5월부터 미군이 지원한 헬기와 군용기 등 아프간 공군이 보유한 비행기 약 200대 중 최소 24대가 탈레반에 넘어간 것으로 추정했다.

NYT는 “탈레반이 자체 공군력 없이 이 장비를 운용할 수 있을 것 같진 않다”며 “탈레반에 더 이점이 되는 건 그들이 가로 챈 수백대의 험비와 픽업트럽 그리고 셀 수 없이 많은 무기와 탄약”이라고 전했다. 실제로 탈레반 대원들이 새로 획득한 총기와 군 차량을 과시하는 영상이 트위터에 올라오기도 했다.

탈레반 대원들이 탈취한 무기를 정비하고 있다. 트위터 캡처

아프간 주요 도시에선 무혈입성한 탈레반이 거리를 행진했다. 한 영상에선 탈레반이 지난 12일 점령한 헤라트에서 ‘경찰’이라고 적힌 차량에 탑승해 성채로 진입하는 모습이 나온다. 카불 진격 당시엔 트럭과 오토바이에 탄 탈레반 대원들이 시내를 돌며 환호하고 박수치는 모습이 영상으로 공개됐다.


탈레반이 지난 12일 점령한 아프간 헤라트에서 ‘경찰(POLIC)’이라고 적힌 차량에 탑승해 성채로 진입하는 장면. 트위터 캡처

아프간을 탈출하려는 시민들이 구름처럼 몰려 아수라장이 됐던 카불 국제공항은 미국의 통제 아래 운영이 재개됐다. AFP통신 등에 따르면 미 합동참모본부 병참 담당 행크 테일러 소장은 “카불 국제공항 운영이 16일 오후 11시쯤 재개됐고 공항 관제 업무도 미국이 맡고 있다”고 밝혔다. 로이터통신은 이날 한 서방국 군 관계자의 발언을 인용해 활주로를 메웠던 군중은 이제 해산했다고 보도했다.

테일러 소장은 공항 안전을 확보하기 위한 해병대 병력이 탑승한 C-17 수송기 한 대가 이미 공항에 도착했고 육군 병력을 실은 수송기도 곧 착륙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는 “현재 카불에 배치된 미군 병력은 약 2500명이며 곧 3500명까지 늘어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정우진 기자 uz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