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들 때까지만…” 아버지가 놓고 간 꽃다발 치워져

입력 2021-08-17 16:34 수정 2021-08-17 16:41
의정부 30대 가장 폭행치사 사건의 유가족이 현장에 놓은 꽃다발과 편지. 페이스북 페이지 '응답하라 의정부' 캡처

“아들이 사망한 자리입니다. 꽃이 시들 때까지만이라도 치우지 말아주십시오”

경기 의정부에서 발생한 30대 가장 폭행치사 사건 현장에 피해자의 아버지가 두고 간 꽃다발이 하루도 안 돼 치워져 공분을 사고 있다.

지난 15일 페이스북 페이지 ‘응답하라 의정부’에 노란색 국화 한 다발이 손편지와 함께 바닥에 놓인 사진이 올라왔다.

작성자는 “의정부 30대 사건 피해자의 아버지가 (아들이 숨진) 그 자리에 놓고 가셨다”며 “주저앉아서 울고 계시더라. 마음 아파서 여기에 올려본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꽃이 시들 때까지만이라도 치우거나 건드리지 말아달라”며 이 앞을 지나가는 모든 분들이 이 글을 보기를 바란다“고 당부했다.

사진 속 손편지에는 “제 아들이 사망한 자리입니다. 꽃이 시들 때까지만이라도 치우지 말아주십시오. 가는 길 혼이라도 달래려는 아비의 마음입니다”라고 적혀 있었다.

하지만 피해자 부친의 꽃다발과 편지는 다음 날인 16일 사라졌다. 작성자는 이날 ‘응답하라 의정부’를 통해 “누군가가 꽃을 치웠다고 한다”고 전했다. 인근 건물에서 일하는 80대 남성 A씨는 한 매체를 통해 “혹시라도 누가 가져갈까 일하는 동안 계속 살펴봤는데 없어졌다”며 안타까워했다.

이 소식에 네티즌들은 “조금만 기다려주지 어떻게 저 꽃을 치울 수 있느냐” “장소가 어디냐. 오늘 당장 꽃을 사서 놔두겠다” 등의 반응을 보였다.

피해자 A씨는 지난 4일 오후 10시45분쯤 의정부시 민락동의 한 광장에서 고등학생 6명과 시비가 붙어 주먹다짐을 벌였다. 이 과정에서 A씨가 크게 다쳐 의식을 잃었다. 그는 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던 중 지난 5일 사망했다.

10일 경기도 의정부시 가능동 의정부지방법원에서 폭행치사 혐의를 받고 있는 10대 A군 등 2명이 영장실질심사를 위해 이동하고 있다. 이들은 의정부시 민락동 번화가에서 30대 남성 B씨와 몸싸움을 벌이다 폭행해 B씨를 숨지게 한 혐의를 받고 있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가해 고교생들에 대한 엄벌을 촉구하는 글이 올라온 바있다. 연합뉴스

이 사건은 피해자의 지인이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가해 고교생들에 대한 엄벌을 촉구하는 청원을 올리면서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청원인은 지난 8일 ‘고등학생 일행 6명이 어린 딸과 아들이 있는 가장을 폭행으로 사망하게 만들었습니다’라는 제목의 청원을 올렸다.

그는 “부검 결과 목, 이마, 얼굴 곳곳에 멍이 있었으며 뇌출혈로 피가 응고돼 폭행으로 인한 사망으로 판명 났다”며 “이번 일을 계기로 법이 바뀌어 다른 피해자가 또 발생하는 것을 막아야 한다”며 가해자들의 엄벌을 촉구했다. 해당 청원은 17일 오후 4시 기준 6만4000여명의 동의를 받았다.

이와 관련, 가해 학생의 친구라고 밝힌 한 학생은 SNS에 “고인이 술 취한 상태로 우산을 들고 와서 내 친구들 오토바이를 보고 멋있다고 했다”며 “친구들은 그냥 ‘네’라고 대답만 했는데 그분이 먼저 혼잣말로 욕하고 폭행해서 내 친구도 폭행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의정부경찰서는 지난 10일 폭행치사 혐의로 B군 등 2명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했지만, 법원은 기각했다.

의정부지방법원은 13일 “사고 경위는 기존에 언론에 알려진 것과 다르다”며 “정확한 사망 원인과 그 사망에 피의자들이 얼마나 기여했는지, 피의자들이 사망을 예견할 수 있었는지 정확히 밝혀지지 않아 방어권 보장을 위해 청구를 기각한다”고 밝혔다.

B군 등 2명은 이날 오전 열린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받기 위해 의정부지법에 출석했다. 이들은 ‘유가족에게 하고 싶은 말 없느냐’ 등의 취재진 질문에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고 법정으로 들어갔다.

최민우 기자 cmwoo1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