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소심 재판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은 정경심 동양대 교수의 주장 가운데에는 “검찰의 계좌추적 결과를 유죄 증거로 삼을 수 없다”는 것도 있다. 검찰이 금융거래 내역을 확보할 때에 각 금융기관에 압수수색 영장 원본을 제시하지 않고, 사본을 팩스로 보내는 방식으로 했으니 증거능력이 없다는 주장이었다. 항소심 재판부는 이 주장에 대해 “항소이유서 제출기한이 지난 후의 것으로서 적법한 항소이유가 아니다”면서도 직권으로 살펴 봤고, 결국 받아들이지 않았다.
검찰이 최종적으로는 선별 파일 목록을 작성한 뒤 금융기관에 직접 방문해 영장 원본을 제시했다는 점을 고려한 판단이었다. 금융기관이 먼저 선별하지 않고 수사기관이 매번 모든 금융거래 자료들을 직접 확보해야 한다면 오히려 인권 침해가 클 것이라고 재판부는 판단했다. 계좌추적 때 은행, 증권사, 제2금융권 등 모든 금융기관을 차례로 방문하는 데 물리적 한계가 있고, 영장 청구 단계에서 발부받을 영장의 숫자를 특정하기도 어렵다는 취지의 판단도 제시됐다. 결과적으로 정 교수에 대해서는 입시비리는 물론 코링크프라이빗에쿼티(PE) 관련 범행에서도 유죄 선고가 이뤄졌다.
17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고법 형사1-2부(부장판사 엄상필)는 최근 정 교수의 유죄를 선고하면서 이번 사건에서 검찰의 금융계좌 추적용 압수수색 영장 집행 방식이 헌법과 형사소송법 절차에 위배되지 않으며, 금융거래 자료에 증거능력이 있다고 판단했다. 이는 금융거래 자료의 증거능력을 문제삼은 변호인 주장에 대한 답변이기도 했다. 정 교수 측은 “모든 계좌 거래내역은 압수수색 영장 원본의 제시 없이 영장 사본을 팩스로 전송하는 방식의 집행으로 압수한 것”이라는 의견서를 내고 거래 자료가 유죄 증거로 쓰일 수 없다고 주장했었다.
검찰은 금융계좌 추적용 압수수색 영장을 1부 법원에 청구해 발부 받고, 이 사본을 은행과 증권사 등 다수의 금융기관에 금융거래정보 요구서, 수사관 신분증 사본과 함께 팩스로 발송했다고 한다. 금융기관으로부터 이메일이나 팩스로 정 교수의 금융거래 관련 자료들을 수신하면 수사와 관련한 자료가 있는지 살폈고, 영장 유효기간 내에 또다시 요구서를 보내 2차, 3차 분석한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은 최종적으로 선별 파일을 작성한 뒤에는 금융기관에 방문, 영장 원본을 제시하고 압수목록을 교부한 뒤 압수조서를 작성했다.
대법원은 2019년 3월 “금융기관 압수수색 영장 집행 때 모사전송(팩스)에 의해 사본을 제시하고 압수조서 및 목록을 교부하지 않은 것은 위법하다”는 판결을 내렸었다. 다만 항소심 재판부는 이 대법원 판결 이후 법원이 압수수색 위법성 여부를 따질 때에 영장 원본 제시 시점을 특정하거나, 반드시 원본 집행이 선행돼야 적법하다고 판단하진 않았다고 짚었다. 결국 ‘선별 파일 목록’을 만들 때까지는 사본을 제시하고, 범위를 좁힌 뒤 원본을 제시해도 증거능력이 훼손되는 것은 아니라는 판단이었다.
항소심 재판부는 수사의 현실적, 물리적인 한계를 말하기도 했다. 재판부는 “대상 계좌(연결계좌 포함)나 금융거래 정보가 아직 특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비교적 단기간인 영장의 유효기간 내에 압수수색 영장 원본을 금융기관 별로 직접 제시하고 현장에서 모두 집행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않다”고 했다. 재판부는 “설령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것은 아니더라도, 수사기관뿐 아니라 즉시 현장에서 집행에 응해야 하는 금융기관에는 지나친 부담을 준다”고도 판단했다.
정 교수 측의 주장대로라면 인권 보호 측면에서 거꾸로 문제가 발생한다는 지적도 있었다. 수사기관이 영장에 기재된 모든 금융거래 정보를 일단 확보한 뒤 이를 보유해 반복적으로 살핀다면, 절차적 통제로서의 영장주의와 적법절차 원칙의 취지에 오히려 역행할 염려가 있다는 것이었다. 수사기관이 금융기관 직원의 도움 없이 직접 금융거래 정보를 탐색해 관련 정보를 압수하는 행위는 “함부로 허용돼서도 안 된다”는 게 재판부의 판단이었다.
팩스를 통한 계좌추적 방식을 놓고 제시된 이번 법원의 판단이 유별난 것은 아니라고 법조계 인사들은 말했다. ‘사본을 통한 수집’-‘범위 축소’-‘추후 원본의 제시’로 이어지는 계좌추적 방식에 그간 일관되게 증거능력이 인정돼 왔다는 것이다. 검찰의 한 관계자는 “금융기관을 직접 방문해 일일이 영장 원본을 제시해야 한다는 식으로 주장한다면 계좌추적을 통한 모든 수사가 부정되고, 이 부분은 특별수사뿐 아니라 일반 사기사건 수사에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고 말했다. “교과서적인 주장대로라면, 금융기관마다 수사 협조 인력이 100명씩은 있어야 할 것”이라는 말도 나왔다.
정 교수 사건은 검찰 수사의 적법성, 증거의 능력 여부를 둘러싼 공방으로 흘러왔다. 항소심 재판부는 정 교수 측의 위법수집 증거 주장에 대해 대법원 판단을 빌려 답변을 내놨다. 재판부는 “실체적 진실 규명을 통한 정당한 형벌권의 실현도 헌법과 형사소송법이 형사소송 절차를 통해 달성하려는 중요한 목표이자 이념”이라고 했다. 재판부는 “형식적으로 정해진 절차에 따르지 않고 수집된 증거라는 이유만을 내세워 획일적으로 그 증거의 증거능력을 부정하는 것 역시, 헌법과 형사소송법이 형사소송에 관한 절차 조항을 마련한 취지에 맞는다고 볼 수 없다”고 했다.
이경원 기자 neosar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