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대통령은 아프가니스탄 철군 결정은 국익을 위한 올바른 결정이었다며 후회하지 않는다는 기존 입장을 재차 분명히 했다. 아프간이 탈레반에 장악된 뒤 공개석상에 모습을 드러내 직접 입장을 밝힌 건 처음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미군 철수 후 아프간 정부의 급속한 패망, 그로 인해 빚어진 혼란의 책임은 인정하지 않았다. 오히려 아프간 정치·군사 지도자들이 스스로 싸울 의지가 없어 몰락했다고 책임을 돌리기도 했다. 국제사회와 미국 내부에서 제기된 책임론에 정면 돌파 의지를 보인 것으로 풀이된다.
미국 내부에선 그러나 바이든 대통령의 리더십을 성토하는 목소리가 더욱 높아졌다. 국제사회는 미국과 나토(NATO) 등에 협조했던 아프간 조력자 구조를 위한 협의를 진행하며 긴박한 하루를 보냈다.
“철군은 국익 위한 것”
바이든 대통령은 16일(현지시간) 기자회견을 하고 “나의 결정이 비판받을 것이라는 걸 알고 있다. 그러나 나는 내가 그 모든 비판을 받아들이고, 다음 대통령에게 넘기고 싶지 않다”며 “이는 우리 국민, 국가를 위해 목숨을 바친 용감한 군인, 그리고 미국을 위한 올바른 결정”이라고 말했다.그는 국익이 없는 곳에서 끝없이 싸우는 과거의 실수를 반복하지 않겠다고도 강조했다. 뉴욕타임스(NYT)는 ‘바이든 대통령이 동맹국들의 비판에 대해 공격적 방어에 나섰다’고 표현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특히 아프간 정치 지도자들에 대한 불만 표출에 상당한 분량을 할애했다. 그는 “(아프간 지도자들에게) 부패 청산, 정치적 단결 필요성 등을 이야기했지만 그들은 어느 것도 하지 않았다. 평화를 위한 외교적 노력을 촉구했지만, 이 조언은 단호하게 거부됐다”며 아슈라프 가니 아프간 대통령과의 대화 내용을 공개했다.
또 “1조 달러 이상을 아프간에 지출했다. 군대를 훈련하고 장비와 돈을 지급했다. 탈레반에게는 전혀 없는 것”이라며 “미래를 결정할 모든 기회를 줬지만, 그 미래를 위해 싸울 의지를 심어줄 수는 없었다”고 강조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탈레반의 정권 탈환이 예상했던 것보다 빨리 전개됐다는 사실은 인정했다. “(철군 과정이) 지저분하고 완벽하지 않다”거나 “아프간 상황을 보면 속이 뒤집힌다(gut-wrenching)”는 표현도 썼다. 그러나 “아프간 정치 지도자들은 (싸움을) 포기하고 나라를 떠났다. 군부도 싸우지 않았다”며 아프간 정부가 포기한 전쟁에서 미군이 희생돼선 안 된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아프간을 영구적으로 변화시키고 재건하려는 긴 노력은 성공하지 못했다. 그리고 나는 결코 그럴 수 없다고 믿었다”며 “지난주의 상황은 아프간에 대한 미군 개입을 중단하는 것이 올바른 결정이었다는 것을 방증한다”고 언급했다. 그러면서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은 5년 전이나 15년 후나 언제든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며 “우리는 그동안 아프간에서 너무 많은 실수를 했다”고 말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나는 수년 동안 미군의 임무가 대테러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며 “경쟁자인 중국과 러시아는 미국이 계속해서 수십억 달러의 자원을 아프간에 쏟아붓는 것을 좋아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인권이 우리 외교정책의 중심이 돼야 한다”며 “인도적 지원은 지역 외교를 통해 계속 추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여야 모두에서 쏟아진 비판
바이든 전 부통령은 미국을 도왔던 수천 명의 아프간 시민들을 구출하겠다고 다시 한번 다짐했다. 그러나 NYT는 “카불과 아프가니스탄의 다른 지역에 남아 있던 많은 사람의 운명은 불확실하다”며 “이중국적을 가진 수천 명의 아프간 시민들이 보복 공격을 당했다는 보고가 있다”고 보도했다.
네드 프라이스 국무부 대변인은 언론 브리핑에서 “우리가 함께할 수 있는 정부는 여성과 소녀를 포함한 국민의 기본권을 보호하고, 테러리스트를 은닉하지 않는 정부”라며 “포용적으로 통치하는 의지를 보여준 후에야 탈레반을 인정할지를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프라이스 대변인은 탈레반에 약속을 지키도록 어떻게 강요할 수 있느냐는 질문에 “지난 20년 동안 정부를 유지하는 데 필요한 수준의 국제적 지원을 받으려면 말과 행동이 일치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국제 원조 철회 등의 조치로 탈레반을 압박하겠다는 의미다.
미국 내에서는 카불 공항에서의 최악의 탈출 상황이 공개되면서 비난이 거세다. 공화당 미치 매코널 상원의원은 “기념비적인 붕괴”라며 “책임은 바이든 대통령에게 있다”고 비판했다. 해병대 대장 출신인 민주당 세스 물턴 하원의원도 “바이든 행정부가 국가 안보뿐만 아니라 정치적 실수도 범했다”고 말했다. 미국 시민 자유 연합은 “대통령이 인도적 보호라는 근본적으로 중요한 임무에 실패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트럼프 행정부가 집권했다면 철수를 포함한 아프가니스탄의 결과는 완전히 달라졌을 것”이라며 “바이든은 다음에 누구에게 또는 무엇에 항복할 것인가?”라고 꼬집었다.
한편,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은 왕이(王毅) 중국 외교 담당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과 연이어 통화하며 아프간 상황을 논의했다.
워싱턴=전웅빈 특파원 imu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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