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항하면 17만원”…탈레반, 작년 초부터 아프간 군경과 ‘투항 밀거래’

입력 2021-08-16 17:36
이슬람 무장단체 탈레반 조직원들이 15일(현지시간)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에 위치한 대통령궁을 장악한 모습. 카불까지 입성한 탈레반은 이날 대통령궁을 수중에 넣은 뒤 "전쟁은 끝났다"며 승리를 선언했다. AP연합뉴스

지난 20년간 미군의 훈련과 함께 수조 달러의 원조를 받아온 아프가니스탄 정부가 속수무책으로 무너진 배경에는 이슬람 무장단체 탈레반의 치밀한 투항 유도 작전이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15일(현지시간) 워싱턴포스트(WP)는 10여명의 아프간 관리 경찰 군인 등과 인터뷰를 통해 내전이 속전속결로 끝나버린 데는 지난해부터 시작된 탈레반의 물밑 거래의 영향이 있었다고 보도했다. 이에 따르면 탈레반은 지난해 초 지방 농촌 마을에서 정부군으로부터 무기를 받고 돈을 주는 거래를 시작했다. 아프간 관리들은 이를 휴전이라고 포장했지만 사실상 투항으로 봐도 무방했다. 한 경찰 지휘관은 WP와의 인터뷰에서 “탈레반은 투항과 탈레반 합류를 조건으로 150달러(약 17만5000원)를 내걸었다”고 회상했다. 약 1년 반 동안 지속된 거래는 지방의 소규모 마을에서 시작돼 도시로 번져 주도 차원의 논의로까지 확대됐다.

실제로 미국의 철군 시작 이후 탈레반에 점령된 최초의 주도 쿤두즈에선 안전을 보장받는 대신 기지의 통제권을 탈레반에게 넘기는 항복 거래가 이뤄졌다. 얼마 후 서부 헤라트에서도 하루 만에 주지사, 내무부 고위 인사 등이 탈레반의 제안을 받아들여 보직을 사퇴했다.

이런 거래가 가능했던 건 아프간 정부의 만연한 부패 속에 군경이 제대로 된 지원을 받지 못하면서 사기가 바닥에 떨어졌기 때문이다. WP에 따르면 아프간 경찰관들은 6~9개월간 급여를 받지 못하는 등 악조건에서 전투에 임했다. 뉴욕타임스(NYT)는 “아프간 군인과 경찰들은 굶주려 있었으며, 탄약조차 제대로 구비하지 못했다”고 전했다.

여기에 결정적으로 기름을 부은 건 지난해 2월 탈레반과 미국이 아프간 주둔 미군의 완전 철수에 합의한 카타르 도하 협정이었다. 철군 합의 이후 아프간 군경 사이에선 미국의 압도적인 공군력과 지원에 의존할 수 없다는 위기의식이 팽배했다. 아프간 특수부대 한 장교는 “정부 편에 섰던 사람들은 도하 합의를 ‘종말’로 받아들였다”며 “그날 이후 모두가 각자 살 길을 찾기 시작했다. 미국이 우리를 실패하게 방치한 것과 같다”고 비판했다.

임송수 기자 songst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