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돌아왔다고?”…국제사회 비난 직면한 아프간 패배

입력 2021-08-16 07:03 수정 2021-08-16 13:34
15일(현지시간) 아프가니스탄 대통령 집무실을 장악한 탈레반 모습. AP통신 갭쳐

“미국이 돌아왔다.”(America is back) 조 바이든 대통령이 국제사회에 던진 이 발언은 아프가니스탄 전쟁의 굴욕적 패배로 조롱거리가 되고 있다.

아프간 철군 과정에서 보인 미국의 폐쇄적 의사결정, 정보예측 실패를 비난하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고, 미국 외교정책 신뢰성에 대한 의구심이 동맹국 사이에서 제기되고 있다는 분석도 쏟아지고 있다.

미국 내에서도 책임론을 놓고 정쟁이 격화됐다. 탈레반 통치가 본격화한 뒤 우려했던 아프간 인권문제가 드러나면 조 바이든 대통령이 최악의 리더십 위기에 직면할 수 있다는 전망도 제기됐다.
"미국 신뢰할 수 있나"
워싱턴포스트(WP)는 “미국 동맹국들은 자국의 국가안보 이익을 위험에 빠뜨릴 수 있는 (아프간 철군) 정책 결정에 대해 (미국이) 충분한 논의를 하지 않았다고 불평하고 있다”며 “유럽에서 동아시아에 이르기까지 전 세계 많은 사람이 미국을 의존할 수 있는지 궁금해하고 있다”고 15일(현지시간) 보도했다.

국제사회는 아프가니스탄이 다시 극단적 테러리스트들의 보호처가 되고, 인권 침해의 상징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내놓고 있다. 아프간과 지리적으로 가까운 유럽과 동아시아는 당장 대규모 난민 문제에 직면했다.

토비아스 엘우드 영국 하원 국방위원장은 트위터에 “(영국과 미국은) AK-47 소총, 로켓추진수류탄, 지뢰로 무장한 반군에게 패배한 역사상 가장 거대한 첨단 동맹”이라며 “어떻게 ‘미국이 돌아왔다’고 말할 수 있느냐”고 지적했다.

엘우드 위원장은 이날 “한 세대의 가장 큰 외교정책 실패에 대해 논의할 수 있도록 의회소집을 요청했다”며 “이것은 기념비적인 전략적 오류이며 역사는 우리를 가혹하게 심판할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로리 스튜어트 전 영국 국제개발부 장관도 최근 바이든 대통령의 철군 결정에 대해 “부끄럽고 불필요한 배신”이라며 “바이든 대통령의 대통령직에 긴 그림자를 드리울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젊은 사람을 집에 데려가 ‘삶을 바꿔주겠다’고 약속했는데, 갑자기 그를 내쫓고 문을 잠그는 것과 같은 행위”라며 “민주주의와 자유의 수호자로서 미국의 역할이 다시 위험에 처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WP는 “영국은 스스로를 미국의 가장 가까운 동맹국으로 간주하는 국가인데, 이례적으로 철군에 대해 가장 노골적인 비판을 표명했다”며 “영국은 미국 주도의 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 미국 다음으로 많은 사상자를 냈다”고 분석했다.

유럽은 당장 난민 문제를 해결해야 할 처지에 놓였다. 캐서린 클리버 애쉬브룩 독일 외교위원장은 “독일은 2015년 시리아 전쟁으로 100만 명 이상의 난민이 유럽에 몰려들었던 것과 비슷한 아프간 난민 탈출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며 “일부 독일 의원들은 워싱턴이 베를린 같은 동맹 파트너들과 (철군 방식 등을) 협의하지 않은 것에 분개하고 있다”고 말했다.

중국은 미국의 약한 고리를 건들고 있다. 관영매체 글로벌타임스는 사설에서 “미국의 필사적 철수 계획은 동맹국에 대한 미국의 약속이 신뢰할 수 없음을 보여준다. 동맹국을 저버리는 게 미국의 이익이 될 때 워싱턴은 주저하지 않고 그런 일을 하기 위한 핑계를 찾을 것”이라고 비꼬았다. 미국 외교정책 신뢰성을 대놓고 지적한 것이다.

WP는 “이란의 공격에 대비해 미국이 지원해주기를 기대해 온 아랍 동맹국들도 미국을 의존할 수 있을지 의문에 직면해 있다”고 지적했다.
미 내부에서도 정쟁 본격화

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의 앤서니 코즈맨 선임연구원은 지난 11일 “누가 아프간을 잃게 했는지에 대한 정쟁이 2022년 중간 선거의 이슈가 될 것”이라며 “논쟁은 트럼프 전 대통령을 비난하는 민주당과 바이든 대통령을 비난하는 공화당에 초점이 맞춰질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의 전망은 이미 현실화했다. 야당은 바이든의 오판이 빚은 참사라고 비판했고, 여당은 “성공한 임무”라고 반박했다.

스티브 스칼리스 공화당 하원 원내총무는 “바이든 대통령은 사이공처럼 헬기를 통한 대사관 대피를 못 볼 것이라 했다. 그러나 이것은 바이든의 사이공”이라며 “미 대사관이 대피하는 것을 보니 매우 끔찍하다”고 비난했다.

하원 외교위 공화당 간사인 마이클 매컬 의원도 “미군 철수와 그에 이은 탈레반의 카불 점령 사태에 바이든 대통령이 책임지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리즈 체니 하원의원은 “‘트럼프·바이든 참사’다. 테러리스트를 평화의 파트너라고 주장한 트럼프 정부가 시작했고, 바이든 정부가 아프간을 포기하면서 미국의 굴복으로 끝을 맺었다”고 지적했다.

반면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은 CNN에 나와 “전 세계에 있는 우리의 전략적 경쟁자 대부분은 미국이 1년, 5년, 10년 동안 아프가니스탄에 남아 있고, 자원을 내전의 한가운데에 바치기를 바란다”며 “그건 우리의 관심사가 아니다”고 CNN에 나와 말했다.

그는 “(바이든 행정부는) 트럼프 전 대통령이 탈레반 측과 벌인 철군 협정에 얽매여 있었다”며 “철군 결정을 취소했다면 탈레반과 다시 전쟁했을 것이며 수만 명의 미군을 다시 급파해야 했을 것”이라고도 강조했다.
탈레반, 아프간 완전 장악

무장세력 탈레반은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을 완전히 장악했다. 대통령 집무실을 장악한 탈레반 영상이 공개되기도 했다. 현지 미국 대사관에 걸려 있던 성조기도 내려졌다.

탈레반 대변인은 알자지라 TV에 나와 “아프간 전쟁은 끝났다. 우리는 모든 아프간 인사와 대화할 준비가 됐으며, 필요한 보호를 보장할 것”이라고 말했다고 로이터통신이 보도했다.

워싱턴=전웅빈 특파원 im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