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만 아프간 장악, 탈레반 “여성 존중” 약속했지만…

입력 2021-08-15 22:10 수정 2021-08-16 00:21
지난 13일(현지시간) 탈레반이 장악한 아프가니스탄 북부를 탈출해 수도 카불 시내 한 공원에 마련된 임시 텐트촌에서 몸을 숨긴 한 여성과 아이의 모습. AP=연합뉴스

이슬람 무장조직 탈레반이 20년의 전쟁 끝에 아프가니스탄을 재장악하며 일성으로 “여성 권리를 존중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과거 탈레반 집권기 시절 ‘인권 암흑기’가 재현될지 모른다는 우려 속 아프간 현지 여성들 사이에선 두려움은 커지는 분위기다.

15일(현지시간)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탈레반 대변인은 이날 언론 인터뷰 등을 통해 “히잡을 쓴다면 여성은 학업 및 일자리에 접근할 수 있을 것”이라면서 여성이 혼자서 집 밖에 나가는 것도 허용하겠다고 밝혔다.

탈레반이 정권 수립을 눈앞에 두고 여성 인권부터 언급한 것은 그만큼 탈레반이 정권을 잡으면 여성 인권이 후퇴하고 비인도적인 조치가 이뤄질지 모른다는 국제사회와 아프간 내 우려가 컸음을 반증한다.

실제 아프간 현지 여성들은 과거 탈레반 집권기(1996~2001년)의 인권 탄압이 벌어질 것에 대한 두려움을 표출하고 있다. 탈레반은 과거 집권 당시 이슬람 종교법인 샤리아법을 내세워 엄격하게 사회를 통제하며 여성의 사회 활동이나 교육, 외출 등에 제약을 뒀다.
지난 12일(현지시간) 아프가니스탄 가즈니주의 주도인 가즈니 시내에서 순촬활동을 하는 중인 탈레반 전투요원들. AP=연합뉴스

이 같은 우려에 낸시 펠로시(민주) 미국 하원의장은 전날 성명을 통해 아프간 여성과 소녀들이 탈레반의 비인도적인 처우에 놓이지 않도록 국제사회가 보호해야 한다고 촉구하기도 했다.

이어 “아프간에서의 어떤 정치적 합의도 여성에 대한 논의를 포함해야 한다”면서 “아프간 여성과 소녀의 운명은 아프간 미래에 대단히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카불에선 이미 여성과 관련해 우려스러운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아프간 톨로뉴스 로트풀라 나자피자다 대표가 이날 트위터에 올린 사진에는 카불의 한 뷰티살롱 외벽에 부착된 여성 모델 광고 사진을 흰색 페인트로 덧칠하는 모습이 담겼다.

다만 이 사진이 언제, 어떻게 촬영된 사진인지 등은 명확히 드러나지 않았다.

한편 탈레반은 이날 수도 카불에서 아프간 정부와 권력 이양 절차에 대한 논의에 들어갔다.

카불에 들어선 탈레반은 카불 공격을 자제하면서 아프건 정부군 병사들에게 귀향을 허용할 것이라고 밝히는 등 600만명의 시민 달래기에 나섰다. 탈레반은 또 카불 내 외국인이 원하면 떠날 수 있고, 머무르기를 원할 경우 새로 들어설 탈레반 정부에 등록해야 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이와 함께 공항과 병원은 계속 운영될 것이며, 긴급 물품의 공급도 중단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로이터 통신 등에 따르면 새 과도 정부의 수반으로는 옛 내무장관 출신인 알리 아흐마드 자랄리(81)가 유력한 것으로 전해졌다. 자랄리는 미국 시민권자로 2003년 1월부터 2005년 9월까지 아프간 내무장관을 지냈다. 자랄리는 아프간 등 중동지역 정치안보 문제에 관한 저작이 많은 학자이고, 미국 국립국방대학교 석좌교수를 지내는 등 미군 교육기관에서 강의하기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슈라프 가니 현 대통령은 이날 오전까지 대통령 궁에 머물렀지만 이미 도피했다는 소문이 돌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스푸트니크 통신은 가니 대통령은 곧 대통령직에서 물러날 것이라고 보도했다.

조민영 기자 mym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