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윤상의 세상만사] 용기 내어 ‘진실’에 서기

입력 2021-08-15 20:01

2004년의 일이다. 세계 3대 과학저널 중 하나인 ‘사이언스’는 황우석 박사가 세계 최초로 사람 난자를 이용한 체세포 복제와 배아줄기세포 형성에 성공했다는 논문을 게재했다. 일부 과학자를 비롯한 소수의 사람들이 이 논문이 허위일 가능성이 있음을 지적하기도 했으나, 묻히고 말았다. 대부분의 언론이 황 박사의 논문과 그가 이룩한 성과를 대서특필했다. 학계와 의료계는 난치병 치료의 새 장이 열렸다고 환호했고, 국민들은 한국인 최초로 노벨 과학상 수상자가 나올 수 있다는 기대감에 한껏 고무됐다.

흥분이 채 가라않지 않던 어느 날, 이런 열기에 찬물을 끼얹는 일이 발생했다. MBC ‘PD수첩’에서 황 박사의 줄기세포 논문이 조작되었을 수 있다는 의혹을 제기한 것이다. 그러자 대다수의 국민이 PD수첩을 성토하기 시작했다. 급기야 이 방송을 기획·보도한 프로듀서들을 매국노라 부르며 살해 위협까지 가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런 상황에서도 PD수첩 프로듀서들은 물러서지 않았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황 박사 편을 드는 상황에서도 프로듀서들은 진실의 편에 서서 후속 보도를 준비했고 용기 내어 보도했다. 대한민국 전체가 격렬한 논쟁에 빠져들었고, 결국 시간이 지나면서 PD수첩이 옳았음이 증명되었다.

인간의 삶은 선택의 연속이다. 여러 의견과 주장을 듣고 어느 편을 선택해야 한다. 어떤 선택은 삶에 많은 영향을 주기 때문에 신중해야 한다. 사람들은 보통 다수의 편에 서게 되면 더 안전할 것 같고 도움이 될 것 같다고 생각한다. 반면 소수의 편에 서면 불안하고 자칫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는 위기감을 느낀다. 그래서 사람들은 쉽게 다수에 동조하고 그 편에 선다.

그런데 과연 다수의 편이 항상 안전을 담보해줄까. 심리적으로는 안도감을 줄지 몰라도 다수의 편이 사실은 진실과 동떨어지고 사회에 해악을 끼치는 경우도 많다. 따라서 다수의 편에 서기 전에 먼저 과연 다수의 편이 진실에 가까운 지에 대해 판단하는 것이 필요하다.

흥미로운 점은 모든 진실은 처음에는 소수의 편에서부터 시작된다는 사실이다. 초기에는 진실을 아는 사람이 적을 수밖에 없고 시간이 지나면서 그 진실이 설득력을 얻어감에 따라서 점차 다수의 편으로 바뀌어 간다. 즉, 지금의 다수는 모두 과거의 소수의 편에서 시작된 것이다.

그래서 비록 지금은 나와 의견이 다를지라도 상대방을 존중하고 경청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상대방의 소수 의견이 나중에 나에게 진실의 불을 밝혀주는 등불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가 갈수록 날카로워지고 있다. 가짜뉴스를 진실인양 가장해서 다수의 세를 형성하고 이를 바탕으로 가짜뉴스를 검증하려는 소수를 찍어 누르며 위협한다. 후에 가짜뉴스임이 밝혀져도 여전히 가짜뉴스는 ‘가짜 진실’의 지위를 차지하고 있다. 이런 사회는 위험하다.

옳지 않은 줄 알면서도 안전하게 다수의 편에 서는 사람들이 많다. 소수이지만 진실의 편에 서는 것은 어렵고 용기를 내야 한다. 그러나 비록 소수이더라고 진실의 편이 결국은 우리 사회를 더욱 안전하고 탄탄하게 만들어준다.

자, 이제부턴 ‘다수’가 아닌 ‘진실’의 편에 서보자.

엄윤상(법무법인 드림) 대표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