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정능력 잃은 軍 “인사권 악용한 사례”…가해자 처벌 강화해야

입력 2021-08-15 16:23

군에서 성추행 사망사건이 또 발생하자 자정 능력을 잃었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군을 향해 쏟아지고 있다. 공군은 물론 해군도 폐쇄적인 군대 문화 속에서 인사권을 쥐고 악용한 사례가 성추행이라는 행태로 발현된 것이라는 진단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가해자의 인사권에도 막대한 영향을 줄 수 있을 만큼 처벌 수위를 높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해군 등에 따르면 성추행 피해 신고 후 지난 12일 사망한 모 부대 소속 A중사에 대해 순직 결정이 내려지면서 A중사는 15일 국립대전현충원에 안장됐다. 국군대전병원에서 열린 A중사 영결식은 유가족이 참석한 가운데 가족장으로 진행됐다. 군에선 박재민 국방부 차관, 부석종 해군참모총장 등 일부 인사만 자리한 것으로 알려졌다.

가해자 처벌을 요구한 유족의 뜻에 따라 수사는 계속 진행된다. 가해자로 지목된 인천의 한 도서 지역 부대 소속인 B상사는 사건 발생 79일 만인 14일 구속됐다. 국방부 조사본부와 해군 중앙수사대는 피해자의 생전 면담 기록과 휴대전화 포렌식 자료 등을 토대로 피해 사실과 2차 가해 등을 수사 중이다.

전문가들은 직속 상관의 평가가 자신의 거취를 좌우하는 군의 특성이 영향을 미쳤다고 평가했다. 양욱 한남대 국방전략대학원 겸임교수는 “일반 회사에서는 부조리한 지시를 내리는 상관과 부딪히거나 직장을 그만두고 나오는 것 등이 가능하지만 군대는 그러기가 쉽지 않다”며 “이런 환경을 악용하는 사람들이 생기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A중사가 처음 주임상사에게 피해를 토로할 때 외부로 유출되지 않도록 요청하고, 사건 발생 2달이 넘도록 정식 신고를 하지 않은 점도 이런 배경과 연관 있어 보인다. 주임상사도 사건이 공개될 경우 A중사의 진급에 영향이 있을 것을 우려해 지휘계통 보고를 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최근 사건이 부사관들 사이에서 벌어졌다는 점도 눈여겨볼 만하다는 견해가 있다. 휴대전화 소지가 가능해지면서 외부 소통이 비교적 자유로워진 병사와 간부 간의 괴롭힘은 줄었지만, 장기간 인간관계로 맺어진 간부들 사이에서의 사건은 견제할 기구가 마땅치 않다는 것이다.

일각에선 범행 처벌 수위를 대폭 높여 예방효과를 꾀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신인균 자주국방네트워크 대표는 “계급정년제가 있는 장교와 달리 부사관은 장기선발이 되면 대부분 정년을 채우게 돼 있다”며 “이 때문에 감봉 정도가 아닌 강제전역까지 할 수 있는 처벌 조항을 넣는 게 효과적”이라고 말했다. 군 관계자는 “흔히 있는 일은 아닌 만큼 사건을 철저히 수사하려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김영선 기자 ys8584@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