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는 비명소리와 눈물, 애도하는 목소리로 가득했다. 생존자들은 맨손으로 무너진 건물 잔해에서 시신을 꺼내고, 생존자를 수색하고 있었다.
11년 7개월 전 대지진으로 수만 명의 사람들이 희생됐던 세상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아이티에 14일(현지시간) 다시 강진이 발생해 최소 수백 명이 사망했다.
미국 지질조사국(USGS)에 따르면 이날 오전 8시 29분쯤 아이티 프티트루드니프 남동쪽 13.5㎞ 지점에서 규모 7.2의 지진이 발생했다. 진원의 깊이는 10㎞로 얕다.
사망자 집계는 현재 300명을 넘어섰다. 아이티 시민보호국 제리 챈들러 사무총장은 이날 오후 “최소 304명이 사망했고, 1800명 이상이 부상을 입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아직 집계 초기 단계라 피해 규모는 더 커질 것이라는 우려가 크다. 주아이티 미국 대사관은 성명을 통해 “아이티 정부는 지진 규모를 고려할 때 사상자가 많을 것으로 보고 있다”고 밝혔다.
사고 후 소셜 미디어를 통해 올라온 현지 영상에는 처참한 상황이 그대로 담겨 있었다. 멀쩡한 건물은 하나도 없었다. 잠옷이나 목욕 타월만 걸치고 거리로 뛰쳐 나와 피난처를 찾는 사람들도 많았다.
피해는 진앙에서 수십㎞ 떨어진 레카이와 제레미 두 도시에 주로 집중됐다. 해당 지역 의사들은 주요 병원이 환자들로 압도됐다고 전했다. 진원지인 푸티투루드니프에선 전화선이 끊겼다.
레카이 지역 성공회 수장인 아비아데 로자마 대주교는 “거리는 비명으로 가득 차 있다. 사람들은 사랑하는 사람이나 자원, 의료 지원, 물을 찾고 있다”고 전했다. 레카이 시장을 역임했던 가브리엘 포츈은 자신 소유 호텔이 붕괴되면서 사망했다고 지역 언론인이 전했다.
뉴욕타임스(NYT)는 “아침 아이티를 강타한 지진은 지난달 대통령 암살로 피해를 입은 가난한 나라에 치명적인 타격을 가했다. 남부 반도 서부에 있는 최소 2개 도시에서 병원 등 건물이 무너져 잔해에 사람들이 갇혔다”고 보도했다.
이어 “아이티는 대통령 암살 사건 수사가 진행 중이어서 리더십 공백 상태다. 국민은 심각한 빈곤 상태에 있고, 일부 지역에선 조직적 갱단 폭력으로 정부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해 자연재해에 대비할 수 없다”고 우려했다.
국립허리케인센터에 따르면 이날 카리브해 동부에서 형성된 열대성 폭풍 그레이스가 아이티로 향하는 중이다. 그레이스는 16~17일쯤 아이티 인근을 지나 산사태 우려도 제기됐다.
이날 지진은 2010년 1월 수도 포르토프랭스를 황폐화한 같은 단층대에서 발생했다. 전문가들은 이번 지진이 과거 지진으로 인해 발생했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봤다. 미 지질조사국(USGS) 수잔 허프 박사는 “2010년 지진과 연관돼 있다”고 말했다.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은 성명을 통해 “애석하다. 미 국제개발처(USAID)가 피해 평가와 부상자 회복, 재건 지원을 위해 일할 것”이라고 밝혔다. 바이든 대통령은 서맨사 파워 USAID 처장에게 아이티 지원을 맡겼다.
워싱턴=전웅빈 특파원 im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