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전등화 아프간…美 “대사관·거주민 철수하라”

입력 2021-08-13 10:39
8일(현지시간) 이슬람 무장조직 탈레반이 점령한 아프가니스탄 북부 쿤두즈의 주요 광장에서 탈레반 깃발이 펄럭이고 있다. AP뉴시스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에서 자국민 철수를 권고했다. 탈레반 반군이 빠른 속도로 수도 카불을 향해 전진하면서 미국은 대사관 인력을 최소화하기로 결정했다. 철수를 준비하던 미군은 자국민의 안전한 철수를 위해 국경 근처에서 주둔하고 있다.

로이터통신은 12일(현지시간) 네드 프라이스 국무부 대변인이 “탈레반과 교전 속도가 빨라지고 있다. 아프간 내부 폭력과 불안정성이 증대하고 있는 큰 우려가 있다”면서 “수 주 내에 주 아프간 대사관 직원을 핵심 인력 정도로 줄일 것으로 예상한다”고 밝혔다고 보도했다. 현재 주 아프간 미국대사관에는 4200여명의 직원이 있고 대부분 미국 시민권자들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주 아프간 미국 대사관은 아프간에 있는 국민들에게 철수를 권고했다. 대사관은 이날 웹사이트를 통해 “안보 여건과 줄어든 지원인력을 감안할 때 시민들을 지원할 대사관 능력은 카불 내에서도 극도로 제한돼 있다”면서 “활용 가능한 상업 항공편을 이용해 즉시 아프간을 떠날 것을 권고한다”고 공지했다.

철수를 준비하던 미군은 공항에 배치됐다. 미 국방부는 아프간 주둔군 3000명을 카불 하미드 카르자이 국제공항에 배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들은 외교관 안전보장 임무를 맡고 있는 미군 650명과 합류해 대사관 및 교민 철수 임무를 맡게 될 예정이다.

프라이스 대변인은 이번 철수가 ‘대피’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그는 “미국은 결코 아프간 국민들을 버리지 않는다. 우리 대사관은 열려 있을 것이고 외교 업무는 계속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렇지만 블룸버그통신은 “(대사관 직원 감축 및 철수는) 미국이 탈레반의 진격 속도를 과소평가해 허를 찔린 것”이라면서 “카불이 곧 탈레반에 함락될 것이라는 미 행정부의 인식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또 “카불이 함락될 경우 외교 업무를 공항 내부로 옮길 가능성도 있다”고 덧붙였다.

지난달 30일(현지시간) 아프가니스탄 서부 헤라트주 엔질 지구에서 정부군이 무장반군 탈레반의 공격에 대비해 경계 근무를 하고 있다. 미군과 국제동맹군이 대부분 철수한 아프간에서 정부군과 탈레반이 곳곳에서 치열한 교전을 벌이고 있다. AFP연합뉴스

미국이 아프간을 완전히 떠나지 않는다고 강조하는 이유는 이달 말 완료를 앞둔 미군 철수가 미국이 아프간에서 완전히 손을 뗀다고 보는 세간의 시선 때문이다. 미군 철수가 발표된 이후 탈레반은 급속히 세력을 넓히고 있다. 외신들은 아프간 34개 주 중 12곳의 주도가 탈레반에게 함락됐다고 보고 있다.

AFP통신은 이날 탈레반이 아프간 제2의 도시인 칸다하르와 헤라트를 연이어 장악하는데 성공했다고 전했다. 도시에 있던 아프간 정부 요인들은 공항을 통해 간신히 빠져나간 것으로 전해졌다. 워싱턴포스트(WP)는 “미군 철수 후 90일 이내에 카불이 함락될 가능성이 높다”면서 “한 달 내 큰 사건이 발생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미국은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아프간 인근 국가들에 병력을 증강배치하고 있다.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에서 출발한 육군 1개 연대가 쿠웨이트에 배치된다. 육군과 공군을 합쳐 구성된 1000여명의 태스크포스(TF)는 미군에게 협조한 아프간인들의 비자 신청을 지원하기 위해 카타르에 배치될 계획이다. 다만 존 커비 국방부 대변인은 “이번 대사관과 시민 철수 작전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면서 “탈레반과의 전투에 다시 관여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황윤태 기자 trul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