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탄생 100주년을 맞은 피아졸라와 코로나 시대에 가장 어울리는 브람스를 ‘클래식 레볼루션’의 주제로 선정했습니다. 관객이 공연을 본 뒤 행복한 에너지를 느꼈으면 합니다.”
롯데문화재단의 여름 음악축제 ‘클래식 레볼루션’의 크리스토프 포펜 예술감독 12일 서울 롯데콘서트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를 열고 올해 축제의 방향과 프로그램에 관해 설명했다. 지난해 시작돼 올해 2회를 맞은 클래식 레볼루션은 13~22일 실내악과 교향악 12개 공연을 마련했다. ‘탱고의 혁명가’ 피아졸라와 ‘후기 낭만파 거장’ 브람스라는 다소 이색적인 조합에 대해 포펜 예술감독은 “피아졸라와 브람스는 매우 대조적”이라면서 “피아졸라의 음악은 전반적으로 어둡고 멜랑콜리하지만 모두가 즐길 수 있는 음악으로 엔터테인먼트적 요소가 강하다. 반면 브람스의 음악은 진지하고 심각하다. 하지만 언제나 희망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고 말했다.
독일 출신의 지휘자 포펜은 세계 유수 오케스트라의 객원 지휘자를 역임했으며 포르투갈 마르바오의 페스티벌의 예술감독을 맡고 있다. 바이올리니스트 출신인 그는 2003년부터 뮌헨 국립음대에서 바이올린과 실내악 교수로 활동하고 있다. 클라라 주미 강, 김동현, 노부스 콰르텟, 아벨 콰르텟, 아레테 콰르텟 등이 그의 제자다. 또 대전시향·통영 페스티벌 오케스트라 등을 지휘하러 한국에 여러 차례 내한한 바 있다. 지난해는 코로나19로 2주간 자가격리를 감수하며 클래식 레볼루션에 참여했지만, 백신을 접종한 올해는 자가격리를 면제받았다.
그는 “지난해 기억을 떠올리면 올해는 코로나19가 종식돼 있을 거로 생각했지만 여전히 마스크를 쓰고 있다. 게다가 코로나19 상황 악화로 (부산시향이 불참하게 되면서) 이번 축제도 프로그램이 일부 바뀌었다”면서 “비록 계획했던 브람스의 교향곡 4곡을 모두 연주하지 못하지만, 축제를 열고 관객을 만날 수 있게 돼 기쁘다”고 밝혔다.
지난해 클래식 레볼루션은 성남시향을 제외하고 서울시향 등 국내 국공립 오케스트라 공연이 모두 취소됐다. 당시 수도권의 신규 확진자 급증으로 각 지자체가 감염을 우려한 탓에 오케스트라가 서울 공연을 불참하기로 한 것이다. 이 때문에 지난해는 실내악단과 단원 50명 이하의 체임버 오케스트라 중심으로 프로그램을 대폭 변경했었다. 올해의 경우 지난해와 달리 5개 국공립 오케스트라들이 참여할 예정이었으나 지난 7월 중순 확진자가 나온 부산시향만 불참한다. 다만 부산시향의 공연 불참 결정이 축제를 얼마 남기지 않고 이뤄지면서 대체 없이 16일 브람스 교향곡 2번 공연을 취소하게 됐다.
“브람스는 삶의 어두운 지점이나 죽음에 대해 많이 고뇌한 작곡가입니다. 하지만 그의 음악은 자연, 예술, 영적인 삶 또한 담고 있으며 우리에게 그 지향점을 바라볼 수 있게 해줍니다. 그렇기 때문에 브람스의 음악은 코로나만이 아니라 다양한 문제에 직면한 요즘 시대에 더더욱 어울린다고 생각합니다.”
포펜 감독의 브람스 사랑은 음악 외에도 특별한 에피소드가 있기 때문이다. 브람스의 대녀(종교적으로 맺은 딸)가 브람스로부터 유산으로 물려받은 책상을 그의 부모에게 선물했으며, 이후 자연스럽게 그가 물려받게 됐기 때문이다. 그는 “브람스가 실제로 작곡했던 책상 앞에서 브람스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이런 일화 덕분인지 브람스는 나에게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고 피력했다. 그는 이번 축제에선 17일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를 직접 지휘하며 브람스 교향곡 4번을 들려줄 예정이다.
축제의 또 다른 축인 피아졸라는 연주자별 해석을 비교해 볼 수 있는 공연이 마련됐다. 19~22일 나흘에 걸친 프로그램에 모두 ‘망각(Oblivion)’이라는 곡이 들어간 것이 대표적이다. 포펜 감독은 “‘망각’은 피아졸라의 명함 같은 곡”이라며 “서로 다른 특색과 버전으로 연주가 이뤄지는 만큼 작곡가의 핵심적 요소를 다양한 관점에서 바라보게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포펜 감독은 이날 코로나 이후 독일 음악계의 상황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독일은 코로나 피해가 심각했던 유럽에서 상대적으로 방역이 좋은 편이었다는 평가를 받지만 문화시설의 문을 닫는 등 강력한 봉쇄를 시행했다. 최근 프랑스나 오스트리아, 영국 등이 공연장의 객석을 100% 여는 것과 달리 독일은 여전히 조심스러워서 50% 이하만 받고 있다.
“코로나에 대한 유럽 각국의 전략은 달랐어요. 개인적으로 보기에 독일은 문화예술에 대해 지나친 제한을 가했다고 봐요.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경우엔 코로나 팬데믹 이후에도 콘서트와 페스티벌을 어떻게든 이어나갔습니다. 반면 독일은 지나친 제약으로 공연을 할 수 없는 경우가 많았어요. 독일은 문화적 자산이 풍부하지만 정치가들은 잘 모르는 것 같습니다. 즉 음악이 사람들에게 위로와 희망을 줄 수 있지만 정치가들의 결정으로 공연을 할 수 없는 거죠. 그에 비교해 한국은 공연이 계속 이어진다는 점에서 훨씬 현명히 대처했다고 봅니다.”
그는 이날 코로나 팬데믹으로 특히 타격이 심한 젊은 음악가들에게 따뜻한 조언을 건넸다, 그는 “최근 전 지구적 위기에서 음악가를 비롯해 젊은 세대들이 힘든 상황에 처해 있다”면서 “내가 평소 학생들을 가르칠 때 ‘음악가는 인간의 감정을 음악으로 표현하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학생들에게 인간의 감정을 제대로 표현하려면 많은 것을 경험해 보라고 한다. 코로나 상황에서 느낀 슬픔과 우울함이 궁극적으로 음악의 토대가 되어 줄 것으로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또다시 브람스를 얘기하자면 브람스 역시 힘든 시기가 있었지만 슬픔과 괴로움을 인내하는 과정을 통해 음악으로 표현했다. 젊은 음악가들이 겪는 다양한 경험들이 다양한 표현을 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고 덧붙였다.
장지영 선임기자 jy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