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은 “죄책 무겁다” 했는데… 여권 “사모펀드 무죄” 아우성

입력 2021-08-12 21:38
2심에서도 징역 4년형을 선고받은 정경심 동양대 교수. 연합뉴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배우자인 정경심 동양대 교수가 11일 항소심에서도 1심과 같은 징역 4년을 선고받은 뒤 여권에서는 “사모펀드와 관련해서는 전부 무죄를 받았다”는 주장이 계속 나오고 있다. 대선 출마를 선언한 이들 중 일부도 이러한 발언을 이어가는 실정이다. 하지만 이는 실제 판결과 다른 주장이다. 정 교수 수사팀은 이러한 주장은 결국 허위의 전제로 검찰 수사를 부당하게 공격, 검찰의 명예를 훼손하는 일이라고 본다.

이낙연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12일 오전 YTN 라디오에 출연해 “사모펀드에 관해서는 모두 다 무죄가 났어요”라고 발언했다. 그는 “윤석열 검찰이 주로 문제 삼았던 것이 사모펀드인데, 그것이 모두 무죄가 나왔다는 것은 검찰이 무언가를 잘못 짚었다는 얘기가 되겠죠”라고 했다. 그는 전날에도 “윤석열씨가 조국 전 장관에 대한 수사의 이유로 내세웠던 사모펀드 관련 혐의, 미공개 정보 이용 주식거래 등에 대해서 모두 무죄가 내려졌다는 것은 수사의 명분이 없었음을 증명한다”고 했다.

이 전 대표와 비슷한 주장을 이어가는 이는 또 있다.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은 SNS를 통해 “검찰이 정작 사모펀드와 관련해 기소한 혐의는 정경심 교수가 코링크PE의 실소유주로서 회사 돈을 ‘컨설팅 용역비’ 명목으로 빼갔다는 억지 혐의 하나 뿐이었다” “사모펀드와 관련해 유일하게 기소됐던 업무상 횡령죄는 1심과 2심에서 모두 무죄로 선고됐다”고 알렸다.

‘사모펀드 관련 모두 무죄’ ‘미공개 정보 이용 주식거래 모두 무죄’ ‘사모펀드와 관련해 유일하게 기소된 혐의는 무죄’라는 정치인들의 말과 글은 사법부가 내린 판단과 완전히 다르다. 서울고법 형사 1-2부(부장판사 엄상필)가 전날 정 교수에게 내린 판결은 사모펀드 관련 공소사실 상당 부분을 유죄로 인정한 것이었다.

재판부는 검찰의 공소사실을 ▲조민의 의전원 부정 지원 ▲사기 및 보조금법 위반 ▲코링크PE 관련 범행 ▲증거인멸 등 교사로 크게 구별해 판단했다. 이 범주 중 3번째로 제시된 ‘코링크PE’는 사모투자전문회사에 대한 투자, 사모투자전문회사의 운영 및 관리 등을 사업목적으로 하는 회사다. 조 전 장관의 5촌 조카이자 지난 6월 징역 4년형이 확정된 조범동씨가 이 사모펀드 운영사를 실질 운영했다. 조 전 장관은 2019년 9월 인사청문회에서 “코링크라는 이름을 처음 들었다”고 했다. 조 전 장관은 다만 “개별 주식을 할 수 없다고 해서, 그 대신 사모펀드를 포함한 펀드에는 가입이 가능하다는 방침을 받고 그에 따라서 아는 5촌 조카를 통해 들어갔던 것”이라고 이 운용사가 운용하는 펀드에 가족의 돈이 투자된 경위를 밝혔었다.

일부 정치인들이 강조하는 것처럼 ‘사모펀드 관련 모두 무죄’가 사실이려면 항소심 재판부가 이 ‘코링크PE 관련 범행’ 부분을 모두 무죄로 판단했어야 한다. 하지만 재판부는 오히려 ‘코링크PE 관련 범행’ 중 상당 부분을 유죄로 판단했다. 일단 재판부는 ▲코링크PE 자금횡령 ▲자본시장법위반 및 범죄수익은닉규제법위반 ▲금융실명법위반 3가지를 코링크PE 관련 범행의 하위 항목으로 분류했다. 검찰이 사모펀드와 관련해 유일하게 기소한 것이 업무상 횡령 혐의라는 지적부터 애초 틀린 것이었다. 이 3가지 하위 항목 가운데 무죄로 판단된 부분은 자금횡령 뿐이며, 나머지는 유죄였다.

미공개정보 이용 주식거래가 모두 무죄라는 주장도 판결과 다르다. 미공개정보 이용 주식거래는 3가지 하위 항목 중 자본시장법위반 부분에 포함되는데, 이 중 WFM 실물주권 10만주 장외매수 부분이 이번 2심에서 1심과 달리 무죄로 뒤집혔다. 다만 정 교수가 동생과 미용사의 명의로 WFM 주식 2만4304주를 장내매수한 부분은 2심에서도 1심처럼 유죄가 선고됐다. 금융실명법위반 부분 역시 2심이 1심처럼 유죄 판단을 유지했는데, 재판부는 이 부분을 코링크PE 관련 범행으로 분류했다.

‘사모펀드 관련’에 대한 재판부의 판단은 ‘전부 무죄’가 아니라 ‘죄책이 무겁다’였다. 재판부는 정 교수에 대한 양형 이유를 밝히며 “피고인이 조범동으로부터 제공받은 미공개 중요정보를 이용하여 주식거래를 한 행위는 유가증권 거래시장의 투명성과 공정성을 저해하는 것”이라고 했다. 재판부는 “일반 투자자들에게 재산상 손실의 위험을 초래하거나 시장에 대한 불신을 야기함으로써 시장경제 질서를 흔드는 중대한 범행에 해당한다”고 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은 공직자윤리법에 따른 재산신고 등의 의무를 부담하는 공직자의 배우자임에도 자신과 가족들의 재산을 늘리기 위한 목적으로 타인 명의의 계좌를 빌려 미공개 중요정보를 이용한 주식거래를 하고 그로 인한 범죄수익을 은닉하는 등의 불법행위를 저질렀다”며 “이러한 범행은 법률이 정한 재산신고 제도, 백지신탁 제도를 무력화시키는 것일 뿐만 아니라, 공직자에게 요청되는 재산증식의 투명성, 공익과 사익의 이해충돌 없는 객관적 공직수행에 대한 기대 등을 해치는 결과를 초래한다”고 했다. 재판부는 “죄책은 결코 가볍지 않다”고도 했다.

2019년 하반기 대검찰청 반부패강력부장으로 정 교수 수사를 지휘했던 한동훈 검사장은 이러한 ‘사모펀드 전부 무죄’ 발언들이 수사팀에 대한 명예훼손이라고 본다. 한 검사장은 “이 범죄가 시장경제 질서를 흔든 중한 범죄라고 적시한 항소심 판결문에 동의한다”며 “이것은 의견에 관한 문제가 아니라 ‘어떤 판결이 났는지’ 사실에 관한 문제로서 논쟁거리조차 아니다”고 했다.

이경원 기자 neosar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