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직권을 남용해 일선 재판에 개입했다는 혐의로 기소된 임성근 전 부산고법 부장판사가 1심에 이어 2심에서도 무죄를 선고받았다. 재판부는 임 전 부장판사의 행위를 부적절한 재판 관여 행위로 지적하면서도 그 행위가 임 전 부장판사의 일반적 직무권한에 속하진 않는다고 했다. 결국 ‘권한 없이 남용 없다’는 직권남용죄의 법리에 따라 처벌할 행위가 아니라고 판단한 것이다.
서울고법 형사3부(부장판사 박연욱)는 12일 직권남용 혐의로 재판을 받아온 임 전 부장판사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임 전 부장판사는 2015년 서울중앙지법 형사수석부장일 때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된 가토 다쓰야 일본 산케이신문 서울지국장의 재판에 개입했다는 등의 혐의로 기소됐었다. 그는 선고 때 구술할 내용을 미리 알려주고, 판결 이유에 박 전 대통령의 행적 관련 보도가 허위인 점을 명시하도록 지시했던 것으로 조사됐었다.
재판부는 임 전 부장판사가 당시 알려주거나 지시한 부분이 ‘계속 중인 사건의 재판업무 중 핵심영역’을 대상으로 한 것이라고 봤다. 재판부는 당시 형사수석부장이던 임 전 부장판사에게 이 부분에 대한 직무감독 등 사법행정권이 없었다고 판단했다. 법원조직법과 각급 법원의 내규를 보더라도 수석부장판사가 법원장을 보좌한다거나, 독자적인 사법행정권이 인정된다는 근거가 없었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임 전 부장판사의 이러한 재판관여 행위가 소송지휘권 행사를 방해했다고 볼 수도 없었다고 판단했다. 카토 타쓰야 사건의 판결 이유 수정, 선고 시 구체적 구술내용 변경 등은 재판부 합의를 거쳐 재판장의 소송지휘권 행사 차원에서 이뤄졌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당시 임 전 부장판사의 강요도 없었다고 덧붙였다. 결국 임 전 부장판사에게 애초 남용할 직권이 없었고, 후배 법관의 권리행사를 방해하지도 않아 범죄로 처벌할 수는 없다는 결론이었다.
재판부는 검찰이 주장하는 ‘지적 사무’ 논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앞서 검찰은 “법관이 미숙한 재판을 거듭하거나 지연시키면 사법행정권자가 재판에 대한 지적 사무를 할 수 있다”며 범죄가 성립한다고 주장했다. 직권남용죄 성립의 전제조건인 직권이 어떤 형태로든 존재한다는 의미였다. 실제 이 논리에 따라 다른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사건의 1심에서 유죄가 선고된 사례도 있었다.
하지만 재판부는 이러한 지적 사무를 인정하면 ‘법원 내부로부터의 재판 독립 침해’가 초래된다고 봤다. 법관으로 하여금 특정 사건에서 대법원장·법원행정처에 대해 복종하게 만들며 그 결과 공정한 재판을 기대하기 어려워진다는 것이었다. 이번 재판부는 임 전 부장판사의 재판개입 행위를 ‘다소 부적절하다’고 표현했다. 앞서 ‘위헌적 행위’로 규정했던 1심보다는 다소 수위가 낮아진 것이기도 하다.
임 전 부장판사는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변호사들의 대한문 앞 집회 사건 판결문에서 일부 표현을 삭제하게 하고, 유명 프로야구 선수들의 원정 도박 사건을 정식 재판에 넘기지 않게 한 혐의로도 재판을 받아 왔다. 이 역시 ‘일반적 직무권한이 없다’는 이유 등으로 무죄가 선고됐다. 임 전 부장판사는 “저의 행위로 재판권 행사가 방해된 적 없다는 것이 항소심에서도 밝혀져 다행스럽게 생각한다”고 했다. 그는 “이유를 막론하고 국민께 심려를 끼친 점 송구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경원 기자 neosar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