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경심 동양대 교수는 항소심에서 ‘동양대 PC 은닉 교사’ 혐의까지 추가로 유죄 판결을 받았다. 1심과 다른 판단이 나온 건 정 교수 측이 다른 혐의를 벗기 위해 했던 해명이 되레 혐의를 뒷받침한 때문이다. 정 교수 측은 동양대 표창장 위조를 부인하는 과정에서 “동양대 PC 위치가 여러 번 바뀌었다”고 주장했는데, 재판부는 이를 증거은닉교사죄가 성립되는 근거 중 하나로 봤다. 입시비리 혐의도 정 교수 측 주장이 오히려 발목을 잡았다는 해석이 나온다.
12일 정 교수 항소심 판결문을 보면 서울고법 형사1-2부(부장판사 엄상필)는 방어권이 남용됐다는 전제 하에 증거은닉교사 혐의를 유죄로 판단했다. 정 교수에게 적용된 혐의는 2019년 8월 자산관리인인 김경록씨에게 동양대 PC 등 증거를 감추도록 시켰다는 것인데, 1심에서는 피고인의 방어권 차원에서 이를 처벌할 수 없다고 봤다. 하지만 2심 재판부는 정 교수의 행동이 피고인으로서의 방어권을 넘어섰다는 결론을 내렸다.
항소심에서 방어권 남용이 인정된 건 정 교수가 스스로 숨길 수 있었던 PC를 남에게 시킨 때문이다. 재판부는 “저장 매체나 PC를 옮기는데 다른 사람의 도움이 필요하지 않은데, 이를 김씨에게 시킨 건 자기비호권의 한계를 벗어났다고 평가할 수 있다”고 판시했다.
이러한 판단에는 정 교수 측이 다른 혐의를 벗기 위해 내놨던 해명이 영향을 미쳤다. 정 교수 측은 항소심에서 동양대 표창장 위조 혐의를 부인하기 위해 ‘동양대 휴게실 PC’의 위치가 검찰의 공소사실과 다르다는 점을 여러 차례 주장해왔다. 정 교수가 평소에도 PC를 동양대와 집으로 여러 번 옮겼다는 것인데, 재판부는 이러한 항변을 콕 집어 “그때마다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은 사정은 드러나지 않는다”고 했다. 동양대 PC(증거)를 은닉하려 했을 때만 김씨에게 시켜야 할 이유가 없다는 설명이다.
재판부는 정 교수 측이 무죄를 주장하며 했던 변명도 다른 진술과 어긋난다고 봤다. 정 교수는 PC를 옮긴 이유를 “나중에 조용해지면 천천히 살펴보려고 한 것”이라고 했는데, 이는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 진술한 “습관적으로 자료를 백업해둔다”는 말과 배치된다는 판단이다. 재판부는 “이 자료도 외장 저장장치로 복사했으면 될 일”이라고 했다.
입시비리를 벗기 위해 했던 주장도 결과적으로는 불리하게 작용했다는 평가가 많다. 정 교수 측 변호인은 항소심 과정에서 “학부모들이 알음알음 체험 활동을 마련하는 건 특수한 일이 아니다”라며 “기회 마련의 측면에서 특목고 학생들이 일반고 학생보다 상대적 우위에 있을 수밖에 없다. 이를 불공정의 문제로만 치부하긴 어렵다”고 주장했다. 당시 입시제도하에서 남들보다 좀더 많았던 기회를 충분히 활용했을 뿐이라는 취지다.
이에 대한 재판부 판단은 “정 교수 측이 재판 내내 당시의 입시제도 자체가 문제라는 태도로 범행의 본질을 흐렸다”는 비판에서 고스란히 드러난다. 재판부는 양형 이유를 설명하면서도 “인턴 확인서를 작성해 준 사람이 잘못이라거나 입학사정 담당자가 허위성을 제대로 심사하지 못한 것이 잘못이라는 취지로 책임을 전가하고 있다”고 질타했다.
임주언 기자 e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