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정보원과 경찰이 청주 지역 활동가들의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에 대해 강제 수사로 전환한 ‘시점’을 두고 여러 해석이 나오고 있다. 증거가 누적돼 더 이상 뭉개기 어려워진 점이 강제 수사에 착수한 주요 배경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한편 야권에선 고의로 수사를 늦췄다는 의혹의 시선을 보내기도 한다.
문재인정부에서 국정원 개혁 작업에 깊이 관여한 한 인사는 12일 “박지원 국정원장 등 현 정부에서 임명한 간부들도 대공수사 파트에서 20년 가까이 진행해온 수사 결과를 외면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라며 “국정원에는 여전히 국정원의 존재 가치를 간첩 수사로 생각하는 이들도 많다”고 말했다. 정권 기조와 관계없이 누적된 정보가 활동가들의 혐의를 드러냈고, 압수수색으로 확보한 증거들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이를 두고 야당에선 국정원이 고의로 수사를 무마시켜 온 게 아닌지 의심하는 분위기가 강하다. 국회 정보위원회 소속 이철규 국민의힘 의원은 “신병을 확보하지 않으면 안 될 단계까지 이르다 보니 더 이상 중단시키지 못했던 것 같다”며 “수사가 무르익었는데도 국정원이 시간을 끈 게 아닌지 강한 의심이 든다”고 했다.
야당 의심대로 국정원이 수사를 고의로 지연시켰다면 책임론이 불거질 수도 있다. 국정원은 내사 과정에서 활동가 중 연락 담당 윤모(구속)씨가 2018년 북한의 지령문과 대북 보고문을 보관하고 있는 사실을 확인했는데, 지난 5월 압수수색 때는 관련 증거를 확보하지 못했다. 강제수사 지연으로 증거 확보에 실패한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올 수 있다.
반면 여권에선 이번 사건에 큰 의미를 두지 않으면서 시점에 대한 해석도 경계했다. 한 여권 관계자는 “청주 활동가들이 국내에서도 별다른 활동 성과를 내지 못하는 등 영향이 없던 것으로 보인다”며 “사건의 파장 자체가 크지 않다는 판단 하에 수사가 공개되는 것을 적극적으로 막지 않았을 수도 있다”고 풀이했다.
국정원이 사건 공개 시기를 저울질했다는 해석도 나온다. 2024년 대공수사권을 경찰에 넘겨주게 된 국정원이 존재감을 과시하기 위해 수사 결과를 이 시점에 내놨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선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반론도 있다. 경찰이 국정원과 합동으로 수사를 진행해 오히려 대공수사권 이관이 순조롭게 이뤄질 수 있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기 때문이다.
수사기관은 정치적 파급력과 사안의 민감성 등을 고려해 조용하게 사건을 진행하려 했다는 입장이다. 사정기관 고위 관계자는 “국정원과 검찰, 경찰 세 기관 사이에서 ‘수사 상황을 공개해서는 안 된다’는 합의가 있었는데 내용이 알려져 난감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청주 활동가들은 압수수색을 당하자 지난 5월부터 인터넷 매체를 통해 수사 상황을 공개해왔다. 지난 2일 4명 중 구속영장이 기각된 손모씨가 직접 구속영장을 공개하면서 20여년에 걸친 정보당국의 내·수사 내용이 구체적으로 드러났다.
김판 이형민 기자 p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