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도쿄올림픽엔 206개국 선수들이 참가했다. 이들이 5년 동안 갈고 닦은 실력을 공정히 평가받으려면 한 나라의 이해관계만을 대변하지 않는 다국적 심판진이 꾸려져야 한다. 여자배구 4강 신화가 쓰인 배구장엔 강주희 국제심판이 유일한 한국인으로 활약했다.
사실 심판의 일상은 베일에 싸여 있다. 심판은 경기의 일부일 뿐,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건 선수들이어서다. 심판의 이름이 부각될 땐 대중의 기대감에 미치지 못한 오심이나 석연찮은 판정이 나왔을 경우뿐이다. 강 심판도 각고의 노력을 기울였다. 각국 심판들이 모여 대회 규칙을 함께 공부한 뒤, 일본의 대학 팀을 섭외해 리허설 경기까지 진행했을 정도. 이 과정에서 경기에 쓰일 태블릿, 기록 프로그램 등이 제대로 작동하는지 수차례 확인을 거쳤다고 한다.
그렇게 강 심판은 이번 올림픽 총 7경기에서 호각을 불었다. 가장 힘들었던 건 격리생활이다. 심판을 보거나 경기를 관람하는 목적 외엔 외출이 통제됐다고 한다. 강 심판은 8일 국민일보와 만나 “코로나19 탓에 무관중 경기가 열리는 건 눈 뿐 아니라 귀로도 판정할 수 있어 편했다”면서도 “격리생활은 너무 답답했다. 숨이라도 틔우기 위해 많은 경기를 관전한 이유”라고 말했다.
힘을 낼 수 있었던 건 한국의 선전 덕이다. 한국 경기가 열리는 날엔 주변 관계자들이 먼저 축하했을 정도. 강 심판은 “국제배구연맹(FIVB) 발리볼네이션스리그(VNL) 15위 팀이 4위를 했다는 건 기적”이라며 “심판들은 물론 FIVB 임원들까지 축하를 건네 한국인으로서 자부심도 느꼈다. 복도에서 만나는 선수들 얼굴도 밝으니 기분이 좋았다”고 했다.
국제무대 최전선에서 일하다보니 각종 뒷이야기도 가장 먼저 접했다. 강 심판은 그 중 케냐전 일본 주심의 오심 논란에 대해 입을 열었다. 오심이 나온 이유론 경기 장면을 확대해 터치·노터치 여부를 판단하는 판독 심판의 자질 문제를 꼽았다. 강 심판은 “네덜란드 판독 심판이 제가 주심을 본 경기 때도 블로커 터치아웃이 문제됐을 때 이어폰으로는 ‘터치’라고 말하며 화면으로는 ‘노터치’라고 내보냈다”며 “같은 판독 심판이 케냐전도 맡았는데, 비슷한 실수를 해 일본 주심이 혼동한 걸로 보인다”고 했다.
국제무대 속 유일한 한국인이란 타이틀은 영광이기도, 중압감이기도 하다. 배구 선진국 심판보다 노력하지 않으면 폄하되기 일쑤라고 한다. 강 심판은 “세계 배구계엔 유럽의 입김이 세다. 임원도, 심판도 유럽 사람들이 많아 그들의 실수는 덮이는 경우가 많다”며 “(김)연경이도 그렇겠지만 저도 말도, 행동도 남들보다 10배는 잘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 화려해보이지만 물 밑에선 엄청나게 발장구 치고 있는 게 마치 백조 같은 삶”이라고 했다.
세계 속에서 자국의 위상을 드높임에도 국제심판들은 제대로 지원받지 못한다. 강 심판은 백신 접종 명단에서 누락돼 문화체육관광부에까지 스스로 연락해야 했다고 한다. 강 심판은 “모든 걸 혼자 알아보다 1차 접종밖에 못 받고 VNL에 참가했다”며 “도쿄에서 만난 핸드볼 심판들도 백신을 알아서 해결했다고 했는데, 협회나 체육회 차원에서 심판들도 챙겨줘야 하는 것 아닌가 싶다”고 했다.
두 번의 올림픽을 소화한 강 심판의 첫 번째 목표는 2024 파리올림픽까지 세 번의 올림픽을 경험하고 은퇴하는 거다. 이는 여성 배구 심판으로선 한국 최초의 업적이다. 이후 아시아배구연맹(AVC), FIVB의 임원에도 도전할 꿈을 꾸고 있다. 강 심판은 “첫 번째, 두 번째 올림픽에 악을 쓰고 임했다면, 세 번째 올림픽은 심판 인생을 정리하며 마지막을 장식하고 싶다”고 했다.
강 심판은 아직 한국배구연맹(KOVO)과 차기 시즌 계약을 체결하지 못했다. 컵대회는 나서지 못하게 됐지만, 이탈리아부터 도쿄까지 이어진 여독을 푸는 기회로 삼을 계획이다. “한 달간 열심히 여행할 생각이에요. 휴가라고 생각하고 푹 쉬고 싶네요.”
도쿄=이동환 기자 huan@kmib.co.kr
[도쿄서 만난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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