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을 한 달 내 장악할 수 있다.”
미 당국자가 워싱턴포스트(WP)에 전한 말이다. 또 다른 당국자는 그 시가를 90일 정도로 예상했다. 이는 미 정보당국이 철군 후 6~12개월 이내 카불이 함락될 수 있다고 본 이전 전망보다 훨씬 빠른 속도다.
월스트리트저널(WSJ)도 “미국의 최신 정보 평가에 따르면 카불이 한 달 안에 함락될 수 있다. 미 당국자들은 아프간 민간인과 군인 등이 탈레반 공격을 앞두고 도시를 떠날 것을 우려하고 있다”고 11일(현지시간) 보도했다.
WSJ은 특히 “탈레반 진격 속도가 조 바이든 행정부를 놀라게 하고, 미 동맹국을 당황하게 한다”고 지적했다.
탈레반은 현재까지 아프간 34개 주도 중 9곳을 장악했다. 유럽연합(EU) 고위 관계자는 전날 “탈레반이 현재 아프간 영토의 65%를 통제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같은 탈레반의 진격 속도가 미국의 애초 예상을 뛰어넘는 것이라는 의미다. 로이터통신도 “(지금 수준은) 예상했던 결과가 아니다”고 한 미 국방부 관계자 발언을 보도했다.
민간인 피해는 매일 늘고, 의료 시스템 상당수는 마비 상태인 것으로 전해졌다. CNN은 “아프간이 더 많은 도시를 점령하면서 아프간에 두려움과 분노가 퍼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뉴욕타임스(NYT)는 “아프간 전 지역에서 대규모 탈출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국경지대에 사람들이 몰리고 있다”고 언급했다.
미국은 그러나 기존 입장을 고수했다. 젠 사키 백악관 대변인은 언론 브리핑에서 카불 조기 함락 가능성에 대해 “우리는 익명이 아닌 미국 정부가 한 정보에 의존한다”며 “8월 말 철군 완료 계획은 계속된다”고 말했다.
네드 프라이스 미 국무부 대변인은 “아프간 평화 협정 필요성에 대한 국제적 공감대를 형성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며 “잘마이 칼리자드 미 평화특사가 러시아와 중국, 파키스탄 특사 등과 도하에서 회담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상황이 빠르게 악화하자 미국 책임론도 높아졌다. 포브스는 칼럼에서 “(지금의 결과는) 미국이 국가 안정을 위한 사전 계획 없이 성급하게 군대를 철수했기 때문”이라며 “미국에 대한 대외 신뢰도의 엄청난 타격을 고려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일각에서는 미국의 대외 정책에 악재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내놨다. WSJ은 “미국의 동맹국과 외교 정책 전문가들은 아프가니스탄 혼란이 극단주의 단체가 다시 번성하고 중국과 러시아가 영향력을 확대할 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는 우려를 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미국의 리더십이 흔들릴 수 있다는 것이다.
아프가니스탄 참전용사인 브래들리 보우먼 민주주의 수호 재단 선임 이사는 WSJ과 인터뷰에서 “바이든 대통령은 미군 철수에 따른 광범위한 결과를 무시하고 있다”며 “중국과 러시아 외교관들이 각국에서 ‘워싱턴은 신뢰할 수 없는 파트너’라는 주장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워싱턴=전웅빈 특파원 im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