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악 불바다’된 시베리아… 남한 면적 1.6배가 숯덩이로

입력 2021-08-11 18:24
러시아 소방요원들이 지난 5일(현지시간) 시베리아 서 야쿠츠크 지역에서 난 산불 앞에 서 있다. AP뉴시스

올해 최악의 불바다는 시베리아였다. 세계 최대 침엽수림 지대인 이곳은 전 세계 다른 화재 피해지역을 모두 아우른 것보다 몇 배나 넓은 땅이 불길에 휩싸였다. 그 불이 한반도에 났다면 남한 전부를 불태우고 북한의 절반까지 숯덩이로 만들었을 규모인 것으로 집계됐다.

워싱턴포스트(WP)는 11일 그린피스 보고를 인용해 올해 시베리아 산불 피해면적이 6만2300평방마일(16만1356㎢) 이상으로 오스트리아 국토면적(8만3879㎢)의 거의 2배라고 전했다. 한국 10만㎢, 북한 12만㎢를 합친 한반도 전체 면적(22만㎢)의 73%다. WP는 “그리스 터키 이탈리아 미국 캐나다에서 발생한 산불을 합친 것보다 크다”고 설명했다.

러시아는 시베리아에서 170건 넘는 산불을 진압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불길을 잡기 어렵거나 가옥과 기반시설을 위협하지 않는다고 판단해 그냥 타토록 내버려 둔 산불도 적지 않다. 이런 화재가 66건으로 그 면적만 거의 8000평방마일(2만719㎢)이라고 한다.

방치된 산불 규모는 한 달째 미국 캘리포니아주 북동부를 불태우고 있는 산불 ‘딕시’(1979㎢)의 10배가 넘는다. 올 들어 미국에서 발생한 전체 산불 100여건(2만3250㎢)에 맞먹는다.

캐나다는 브리티시컬럼비아, 유콘, 매니토바, 온타리오 등지에서 발생한 산불로 약 3만3670㎢가 불탄 것으로 파악됐다. 터키는 1764㎢가 화염에 뒤덮였고 그리스와 이탈리아는 각각 1098㎢, 1044㎢를 산불로 잃었다. 모두 서울(605㎢)을 모두 태우고도 남았다는 얘기다.

시베리아에서 솟구친 연기는 그린란드 서부와 북극권인 캐나다 누나부트에서까지 관찰됐다. 러시아 산불로 발생한 연기가 북극에 도달하기는 사상 처음이라고 미 공영 라디오 방송 NPR은 설명했다.

미 항공우주국(NASA)은 보고서에서 시베리아 극동부 사하공화국(야쿠티아)에서 피어오른 연기가 북극까지 3000㎞ 이상 날아갔다고 전했다. 약 1000㎞인 한반도 남북 길이의 3배 거리다.

NASA는 “(위성 사진을 보면) 지표면 대부분을 시야에서 가릴 정도로 짙은 연기가 동쪽에서 서쪽으로 약 3200㎞, 북쪽에서 남쪽으로 약 4000㎞ 뻗어 있다”고 밝혔다.

시베리아 산불 연기는 2000㎞ 이상 떨어진 몽골까지 날아갔다. 중국 신화통신은 몽골 수도 울란바토르와 북부·중부 일부 지역이 흰 연기로 뒤덮였다고 보도했다.

시베리아 산불의 이산화탄소 배출 규모 역시 단일 지역 화재로는 압도적이다. 유럽연합 코페르니쿠스대기감시서비스는 올해 6월 이후 러시아 전역에서 일어난 산불로 5억500만톤 넘는 이산화탄소가 배출된 것으로 추정했다. 지난해 전체 배출량 4억5000만톤을 크게 웃돈다.

NPR은 “그린피스 연구에 따르면 지난해 러시아 화재는 나무 47억 그루를 태웠다”며 “한 달 동안 스웨덴의 연간 총배출량과 같은 이산화탄소를 내뿜었다”고 설명했다.

러시아 정부는 개방된 대초원 지대나 농지를 제외하고 인구밀집지역을 위협하는 산림보호구역 화재만 집계한다. 당국은 올해 산불 면적이 3만 평방마일(7만7699㎢)을 조금 넘는 것으로 추정했다. 그린피스 수치의 절반도 안 되는 규모다.

그린피스 러시아지부 산림 전문가 알렉세이 야로센코는 WP에 “관료들은 산불 규모에 대해 거짓말을 할 뿐”이라며 “모든 공무원이 그곳(관할지역)에 아름다운 풍경이 있도록 해야 할 책임이 있기 때문에 고의로 데이터를 부정확하게 전달한다”고 주장했다. 지방정부가 중앙정부와 충돌하지 않기 위해 지역 실태를 무시하는 경향을 보인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러시아 당국과 국영 언론은 화재 발생 현황이 아니라 진압 현황을 발표하는 식으로 문제를 축소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취약한 산림이 얼마나 소실됐는지, 야생동물은 얼마나 죽거나 다쳤는지는 추정하지 않는다고 그린피스는 지적했다.

시베리아 산불은 기록적으로 덥고 건조한 날씨가 이어지는 가운데 번개가 내려치면서 발생하는 것으로 파악된다. 농부나 마을사람들이 잡초를 제거하고 새로운 풀이 나게 하려고 불을 놓는 관습도 한 원인으로 꼽힌다. 부패한 관료나 기업이 불법 벌목을 은폐하려고 불을 질렀다는 음모론도 나돈다.

1월 평균기온이 영하 40℃를 밑돌아 ‘겨울왕국’으로 묘사되는 시베리아는 올여름 폭염에 타들어가고 있다. 지난 6월 21일 사하공화국 베르호얀스크는 최고 기온이 48℃에 달했다. 지난해 6월 20일 38℃로 1885년 관측 이래 가장 높은 온도를 기록한 지 꼭 1년 만이다.

야로센코는 “러시아 산림의 약 절반이 지역 당국 보호를 받지 못한 채 방치되고 있다”며 “그들은 환경 유지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는 만큼 불에 타면 환경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고 강조했다.

강창욱 기자 kcw@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