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엔 “권리행사 시간 지났다”… 강제징용 피해자 또 패소

입력 2021-08-11 18:11 수정 2021-08-11 19:11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유족이 일본 기업을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했지만 “민법상 3년의 소멸시효가 완성됐다”는 이유로 법원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대법원이 2012년 5월 “한일 청구권협정에도 불구하고 강제징용 피해자들에게 손해배상 청구권이 있다”는 판단을 제시했는데, 이번 피해자들의 소송 제기는 그로부터 3년이 넘게 흐른 2017년 2월에야 이뤄졌다는 것이다.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손해배상 청구권이 과연 언제 소멸되는지의 문제는 당분간 여러 재판부에서 쟁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 부분에 대한 대법원의 첫 판단은 2012년 5월 있었지만 파기환송심과 재상고심을 거쳐 2018년 10월 최종 확정됐기 때문이다. 법조계에서는 2018년 10월부터 3년이 되는 오는 10월을 소멸시효 완성 시점으로 봐야 타당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시민사회에서는 민법의 ‘소멸시효 3년’ 규정이 일본 전범기업들에 면죄부가 되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서울중앙지법 민사25단독 박성인 부장판사는 일제강점기 강제징용 피해자인 이모씨의 유족 5명이 일본 미쓰비시 마테리아루(전 미쓰비시광업)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11일 기각했다. 이씨 유족이 2015년 5월 이후에 소송을 제기했다는 게 기각 이유였다. 이씨는 1941~1945년 일본 나가사키현 소재 탄광에서 노역을 하다 다리를 다쳤고, 이후 국외강제동원 피해자로 인정받았다. 이씨 유족은 2017년 2월 1억원을 청구하는 소송을 냈다.

재판부는 이씨 유족의 권리행사 장애사유가 해소되는 시점을 2012년 5월 24일로 판단했다. 대법원은 2012년 5월 24일 다른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일본제철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손해배상 청구권이 한일 청구권협정에 따라 소멸되지 않았다”고 판단했었다. 이 판결은 재상고와 전원합의체 논의를 거쳐 2018년 10월 확정됐다. 두 번의 대법원 판단 시점 가운데, 재판부는 소멸시효 시작점을 2018년이 아닌 2012년으로 봐야 옳다고 했다. 대법원이 2012년 5월 판시한 법리가 파기환송심·재상고심에서 유지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법조계는 “재판부가 소멸시효 적용 기준을 엄격히 봤다”면서도 “논의의 여지가 있다”는 반응이다. 다른 관점의 하급심 판단도 있다는 것이다. 예컨대 광주고법은 미쓰비시중공업 근로정신대 피해자들의 항소심에서 “2018년 10월 30일을 기준으로 권리행사에 대한 장애사유가 해소됐다고 본다”고 했었다. 강제징용 피해자 다수를 대리해온 임재성 변호사는 “2012년 판결이 2018년 판결에 의해 바뀔 수 있는 상황에서 2012년을 권리행사 가능 시점으로 판단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고 말했다.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손해배상 소송에 대한 판단은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다. 지난 6월에는 같은 법원의 다른 재판부가 “소송을 통한 권리 행사는 제한된다”며 각하 판결을 내렸었다. 서울의 한 법관은 “강제징용과 관련해서는 결국 대법원 판단을 거쳐 정리돼야 할 중요 쟁점이 많다”고 말했다.

이경원 기자 neosarim@kmib.co.kr